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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이탈리아

2018년 3월 이탈리아 여행 Day 8 (1) 로마를 상징하는 원형 경기장, 콜로세오 (콜로세움, Colosseo)

by G-I Kim 2018. 6. 22.




이탈리아 로마를 상징하는 건물인 콜로세움, 콜로세오(Colosseo)는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원형 경기장으로, 서기 80년 베르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습니다. 총 5만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경기장으로 80여 개의 아치문을 통해 관중들이 입장하는 데 30분, 퇴장하는 데 불과 15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개폐형 지붕과 같은 놀라운 시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검투사들의 경기가 계속되다가, 450년 호노리우스 황제가 경기를 중지시키면서 콜로세옹의 역활이 끝나게 됩니다. 서로마 제국 멸망 후 콜로세움은 그대로 방치되었는데 이후 콜로세오는 지진의 피해를 입기도 하고 중세 교회를 짓는 재료로 쓰이기 위해 외벽 절반 이상이 뜯기게 되어 현재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침 일찍 호텔의 조식 식당에 가서 간단히 식사를 합니다. 



▼ 그럭저럭 시설이 괜찮았던 4성 급 호텔인 PAPILLO HOTEL ROMA에서 나와 버스에 짐을 넣습니다. 오늘은 여행이 끝난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로마 공항으로 가야 합니다. 오전에는 로마 시내 관광은, 그리고 오후에는 바티칸 관광을 해야 하는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합니다. 호텔 주변에 대형 슈퍼마켓이 있었는데 결국 들려보지 못하네요..



▼ 우리를 태운 버스가 로마시내를 지나갑니다. 로마 시내에도 여기저기 우산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소나무에 비해 기품은 없어보이지만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에 가로수로는 좋은 나무 인 것 같습니다.



▼ 콜로세오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이른 아침이지만 이미 많은 단체 관광객들이 모여 있습니다. 콜로세오와 바로 옆에 있는 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이 보입니다.



▼ 콜로세오의 바로 옆에는 로마에서 가장 큰 개선문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Arch of Constantine, Arco di Constantino)이 있습니다. 밀비오 다리에서의 승리를 기념해 315년 세워진 이 개선문은 높이 28 미 , 너비 25 미터입니다. 밀비오 다리에서의 전투에서  콘스탄틴(Constantinus)은  막센티우스(Maxentius)에게 승리를 거두고 단독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으며 자신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다고 믿어 AD 313년에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게 됩니다.  이 개선문을 인상 깊게 본 나폴레옹이 파리로 가져가려고 했었지만 불가능했고, 결국 이 개선문을 본떠 파리에 개선문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북쪽에는 메타 수단스(Meta Sudans)이라는  고대 로마의 분수대 유적이 있습니다. , 싸움을 끝낸 검투사들이 나와서 땀과 피를 씻거나 행인들이 물을 마셨던 곳입니다. 



▼ 메타 수단스는 오래 전에 파괴되기는 했지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는 남아있었지만.무솔리니 집권 후 로마 도로를 재정비하면서, 지저분하게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밀어버려. 1937년 이후로는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 콜로세오 서쪽에 비너스와 로마 신전 (Tempio di Venere e Roma) 이 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121년에 짓기 시작해 피우스 황제 때인 141년에 완공되었는데 283년 대화재로 소실됐다가 막센티우스 황제 때 재건되었습니다. 길이는 145 미터, 폭이 100 미터이 건물로  9세기 무렵 대지진으로 크게 피해를 입은 후 계속 파괴되어 지금은 신전 주변의 기둥만 몇개 남았습니다



▼ 신전에는 건물 두 채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각 건물에는 비너스 동상과 로마 신의 동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의 둥근 돔 아래에 동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무너진 신전 자리에 교황 레오 4세에 의해 지어진 산타 프란세츠카 로마나 성당 (Santa Francesca Romana)이 있습니다.



▼ 티투스 개선문은 콜로세오 서쪽, 포로 로마노의 남동쪽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티투스가 재위 2년 만에 요절하고 그의 뒤를 넘겨받은 그의 동생 도미티아누스가 즉위 즉시(82년) 형의 70년 예루살렘 공략을 기리기 위해 건설한 것입니다. 티투스는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와 함께 로마 황제 네로에 의해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팔레스타인 반란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되었는데 이 지역에서 유대인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합니다. 서기 70년 티투스는 유대인 팔레스타인 반란 진압 작전의 전권을 쥐고 마지막 공략지인 예루살렘성을 공격 성벽을 허물고 성내로 들어가 유대인들을 도륙하고 성전을 파괴합니다. 이때 무너지지 않은 성벽이 바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통곡의 벽입니다. 티투스는 예루살렘성에서 약탈한 물자와 유대인 포로들을 로마로 가지고 오게 되고 티쿠스의 아버지인 베스파시아누스는 이때 얻은 재물로 과거 로마황제의 호화궁전 터에 콜로세오를 건설하게 됩니다.  이 개선문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것은 18세기 이후 유럽 각국에 세워지는 여러 개선문의 모델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인데 예루살렘 공격과 약탈 장면이 부조로 남아 있습니다.



콜로세오는 아침 9시부터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콜로세오 내부는 구경하지 못하고 외관 구경만 하였습니다. 콜로세오는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원형 경기장으로, 서기 80년 베르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습니다. 총 5만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기장으로 검투사 경기나 서커스 관람이 가능한 스타디움의 개념인 앰피시어터입니다. 원래 완공됐을 당시의 원형 경기장의 크기는 일부만 남아있는 현재보다 훨씬 컸다는데 외벽의 높이는 52 미터였고 네로의 개인 궁전에서 뜯어낸 각종 조각상들을 외벽의 아치 내부에 배치했습니다. 콜로세오의 자리는 원래 황제 네로의 황금궁전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 1층부터 도리아,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는 이 경기장은 베수비오 화산에서 나오는 화산재를 이용한 콘크리트같은 특수 건축재와 무게를 분산시키는 아치형 구조를 채택해 비교적 적은 자재로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최상층에는 나무 기둥이 설치되어 햇빛이 강한 날에는 현대의 돔구장처럼 천으로 된 차양막이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 콜로세오 외부에 콜로세오의 내부 구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서가 있습니다.



▼ 콜로세오는 입장료를 내고 안에 입장할 수 있으며 엘리베이터 까지 설치되어 있습니다.



▼  콜로세오에서는 맹수의 시합이나 검투사 경기가 개최되었고, 황제부터 노예까지 모든 로마 시민들이 함께 관람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분에 따라 자리가 달랐는데 1층은 귀빈석, 2층은 일반석, 3층은 무료로 입장 할 수 있는 입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작은 나무나 흙으로 구워진 입장권에 쓰인 번호가 적힌 출입구로만 드나들 수 있어 수만명의 관중이 들어가는 거대 경기장이지만 30분이면 모두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경기장에 물을 채워서 가상 해상전을 벌이기도 했고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로 맹수를 올려보내 검투사와의 싸움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지하의 시설은 처음에는 없었다가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확장공사를 할 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 콜로세오 주변의 매표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습니다. 인기 관광지이므로 콜로세오는 티켓을 구입하거나 입장하려면 줄을 오래 서야 합니다.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콜로세오 세 곳은 통합 입장권으로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하려면 포로 로마노나 팔라티노에서 티켓을 구입한 후 콜로세오에 입장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로마 패스를 이용하면 바로 입장이 가능합니다. 주변에 메트로 B, B1선 Colosseo 역과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