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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이탈리아

2018년 3월 이탈리아 여행 Day 8 (2) 고대 로마의 대형 원형경기장 키르쿠스 막시무스 (Circo Massimo)

by G-I Kim 2018. 6. 23.

 

 

 

 

 

대경기장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o Massimo)는 ‘최대의 경기장’이란 뜻으로 영화 〈벤허〉에서 볼 수 있었던 전차 경기가 열리던 곳입니다. 역사상 최대의 운동경기장으로 U자형 구조로 세 면에 좌석이 배치되고 경기장 한가운데 낮은 벽을 세워 벽을 따라 돌며 전차 경기를 벌였다고 합니다. 기원전 50년 경에 율리우스 카이사르 때에는 15만 명을 수용하도록 재건되었습니다. 서기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가로 600 미터, 세로 200 미터 정도의 크기에 30만 석 규모로 확대해서 그 뒤에 지은 어느 경기장보다 더 넓었다고 합니다.  서기 549년을 끝으로 마지막 전차 경기가 벌어졌는데 지금은 팔라티누스 언덕과 아벤티누스 언덕 사이에 터만 남아 있습니다. 

 

▼ 콜로세오 관람 후 벤츠 승합차를 타고 거대 경기장 유적인 키르쿠스 막시무스로 이동합니다. 콜로세오 근처 대로에는 우산 소나무가  심어져 있고 관광객을 태우고 온 대형 여행버스들이 보입니다. 로마 시내 유적지 근처는 현재 대형 시내버스의 운행이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승합차로 이동해야 합니다. 

 

 

 

▼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o Massimo)에 도착해서 보니 구조물은 하나도 안 보이고 넓은 공터만 보입니다.  로마 시대 초기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울 당시 팔라티노 언덕과 아벤티노 언덕 사이의 골짜기였던 이곳은 늪지대였습니다. 로물루스는 바로 이 늪지대 언저리의 평지에서 말달리기 경주를 포함한 축제를 벌였는데 사비니인들을 초대해놓고 그 여인들을 납치했다고 합니다. 에트루리아계의 제5대 왕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이 골짜기에 배수공사를 하여 테베레 강으로 물을 뽑아내고 경기장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키르쿠스 막시무스 건설의 시초입니다.

 

 

▼ 기원전 329년 목조로 된 카르케레스(carceres)가 북쪽면에 세워지고 나서 본격적인 전차경기장이 되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대대적으로 확장한 후에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10년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에서 가져온 높이 23.7미터나 되는 람세스 2세의 오벨리스크를 중앙분리대 위에 세웠습니다. 이후 더 확장되어 길이와 폭이 각각 600미터, 200미터가 넘었고 30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역사 상 가장 큰 경기장이었습니다. 중앙 분리대가 있어서 그 주위로 마차가 회전하는 형태이었습니다.

 

 

▼  키르쿠스 막시무스는 현재 황폐화되어 당시의 웅장했던 관중석의 구조물이 남동쪽에 조금만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로마 시민들은 이곳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하거나 조깅을 하거나 축구를 하기도 합니다. 특히 로마 시 축구팀이 우승하는 날이면 수십만의 열광적인 축구 팬들이 이곳에 모여 온 시가지가 떠나갈 듯이 경적을 울리며 밤이 깊도록 광란의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산책하는 시민 몇 명 만 보입니다. 경기장의 서쪽 끝에는 경찰서 건물이 있는 데 그 뒤로 진실의 입 (Bocca della Verita)으로 유명한 밸런타인데이에 유래가 된 성 밸런타인의 유골이 있는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Cosmedin)이 있습니다. 

 

 

▼ 남동쪽에 남아 있는 경기장의 구조물을 보아도 과거 이곳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 키르쿠스 막시무스 북쪽에는  팔라티노 언덕(Palatine Hill)에 세워진 로마 궁전의 일부를 이루었던 도무스 세베리아나(Domus Severiana) 유적이 보입니다. 팔라티노 언덕(Palatine Hill)에 세워진 로마 궁전의 일부를 이루었던 도무스 세베리아나(Domus Severiana) 유적이 보입니다. 

 

 

▼ 공화정 시대에는 유력한 시민들의 저택과 신전들이 팔라티노 언덕에 많이 세워졌으며, 로마 제국시대에는 귀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아우구스투스는 이곳에 자신의 궁전을 지었으며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건축가 라비리우스를 시켜 지형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이 언덕에 있던 건축물도 황폐해졌고 중세시대에는 요새로 사용되다가 버려졌고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로 인해 이 지역의 가치가 재조명된 후 로마의 여러 귀족들이 다시 저택을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도무스 세베리아나 등 일부 건물의 폐허만 남아 있습니다.

 

 

▼ 키르쿠스 막시무스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수많은 상점이나 음식점들이 있었는데 경기장 주변에 형성된 커다란 시장에는 불에 타기 쉬운 물질도 많았습니다. 서기 64년 로마 황제 네로가 재위할 때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기 로마의 전 시가지로 번져 로마를 초토화시켰습니다. 이곳 경기장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1년 만에 복구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