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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아프리카 여행/이집트, 두바이

2018년 12월 이집트, 두바이 여행, 여행 6일, 룩소르 카르나크 신전 (Temple of Karnak)

by G-I Kim 2020. 12. 26.

 

카르나크 신전(Temple of Karnak)은 이집트 고대도시 룩소르 나일강변에 위치한 이집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신전입니다. 기원전 1990년부터 건립을 시작하여 1,300년 동안 여러 파라오들에 의해 여러 차례 개축되었습니다. 이집트 중왕국, 신왕국,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거쳐 만들어진 신전과 탑, 오벨리스크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대열주실, 투트모세 1세와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 투트모세 3세 신전이 가장 유명합니다.  

 

 

▼ 세계 최대의 신전인 카르나크 신전 서쪽에는 방문자 센터가 있습니다. 방문자 센터에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합니다.

 

 

 방문자 센터 옆에는 기념품이나 옷을 파는 점포들이 있는데 이 곳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약국이 있다는 표지판을 보았지만 정확한 약국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방문자 센터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을 거쳐야 신전으로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소지품 검색은 합니다.

 

 

 입장권 가격이 150 이집트 파운드입니다. 한화로 1만 원이 넘는 금액입니다.

 

 

 방문자 센터에는 매표소 이외에는 별다른 시설은 없고 카르나크 신전의 모형도입니다. 지금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유적은 기준으로 만들어진 모형도입니다. 

 

 

 카르나크 신전이 있는 룩소르는 과거 테베라고 불렸던 고왕국 시대부터 존재해왔던 오래된 도시입니다. 중왕국 시대 제11대 왕조 때에는 이집트의 수도이기도 했고 이후 다른 곳으로 수도가 천도되기도 했지만 신왕국 시대 제18 왕조 때 다시 수도가 되어 오리엔트 세계의 중심 도시로 국제적인 번영을 누렸습니다. 테베에는 다양한 건물들이 들어섰지만 그중에서 중왕국 시대에 지어진 카르나크 신전은 규모 면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축물입니다.  

 

 

 카르나크 신전은 이집트 신화에서 중요한 신인 아문 신과 라 신을 제사 지내는 신전이었습니다. 기원전 1990년부터 건립을 시작했는데 아메넴헤트 1세가 착공한 이후 후대 파라오들에 의해 여러 차례 개축되었습니다. 

 

 

 방문자 센터에서 나오면 신전 서쪽의 커다란 광장이 나옵니다.

 

 

 광장 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야자수가 인상적입니다.

 

 

 멀리 신전의 제1 탑문이 보입니다. 신전 구조물 중에 가장 마지막으로 세워진 것으로 제30 왕조 넥타네보 1세 때입니다. 기원전 360년경으로 이집트 문명의 막바지 기간입니다. 카르나크 신전은 기원전 1990년부터 계속 지어졌으며 무려 1300년간 계속 공사를 하면서  확장되었습니다.

 

 

 제1 탑문 앞의 검색대를 거쳐 입장합니다. 이집트의 유적지는 대부분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제1 탑문 바로 앞에는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스핑크스의 길>입니다. 원래 124개의 스핑크스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40여 개만이 남아 있습니다.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는  이 신전의 주인인 아문 신을 상징합니다.

 

 

 제1 탑문 오른쪽과 스핑크스의 길 사이에는 부두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매년 오페트 축제기간 동안 카르나크 신전에 있던 아문 신상이 나일 강을 통해 잠시 룩소를 신전으로 이동했는데 이때 사용하던 중요한 시설입니다.   

 

 

 스핑크스는 원래 동물의 왕 사자에 대한 주물 숭배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나 성격이 달라집니다.

 

 

스핑크스가 마치 파수꾼처럼 도열해 있습니다.

 

 

제1 탑문을 지나 대궁정 (Great Court)으로 들어왔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세티 2세의 신전(Temple of Sethos II)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테베 3신인 아문(Amun), 무트(Mut), 콘스 (Khonsu)의 예배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궁정에는 많은 기둥들이 있습니다. 카르나크 신전은 기원전 1990년부터 계속 건설되었는데 파라오들에 의해 신전 안에 여러 개의 소진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집트가 이민족의 지배를 받고 로마시대가 되자 신전들은 사람들에게서 잊혔고 이후 모래 속에 파묻히게 됩니다. 

 

 

 대궁전은 폭이 103미터, 길이가 84미터입니다. 대궁정에는 파피루스 모양의 기둥 앞으로 스핑크스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들입니다. 머리가 없는 스핑크스 들도 많이 보입니다.

 

 

 신전의 탑문들은 햇볕에 말린 벽돌을 쌓아서 만든 벽입니다. 수천 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던 벽입니다.

 

 

 람세스 3세의 소신전입니다. 입구에 람세스 3세의 석상들이 서 있습니다. 석상들이 마치 걸어가는 듯한 모습입니다. 람세스 3세는 제2 탑문인 람세스의 탑문 밖에 이 탑문과 직각이 되도록 아문에게 바치는 작은 신전을 지어, 세티 2세가 건립한 된 신전과 마주 보게 했습니다.

 

 

 람세스 3세의 소신전에 들어서면 궁정이 나타나고 양쪽에 8개의 오시리스 기둥이 보입니다.

 

 

▼ 이 오시리스 기둥들은 아마도 람세스 3세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람세스 3세는 고대 이집트의 제20 왕조의 제2대 왕(재위 BC 1187~BC 1156)으로 팔레스타인 땅 일부를 차지하였고 메디네트 하브의 대신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기둥과 벽에 많은 상형문자들이 보입니다. 람세스 3세는 아들인  펜타웨어(기원전 1173~1155년)를 왕위에 올리려는 왕비의 음모로 암살당했다고 합니다. 펜타웨어 왕자는 친부인 람세스 3세를 암살하는 계획을 세운 역모죄로 스스로 목을 맬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펜타웨어는 사후에 방부 처리되지 않고 양가죽으로 감겼는데 후에 <절규하는 미아>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곳은 람세스 3세가 아문신에게 바친 신전입니다. 람세스 3세가 적과 싸우는 모습, 람세스 3세와 아문 신과의 각별한 관계 등이 부조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제 제2 탑문으로 이동합니다. 탑문 앞에 거대한 석상이 보입니다. 제2 탑문은 원래 파라오 호렘헵이 건설하기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람세스 1세와 세티 1세를 거쳐 람세스 2세 때 완공되었습니다. 

 

 

 신왕국 시대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 때 완공된 카르나크 신전이 최전성기를 맞은 것은  람세스 2세 재위 기간 때였습니다. 제2 탑문은 이전에 세워진 건축물을 파괴해서 지어진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 학자들이 이 사실을 알아내고 탑문을 재조립하였는데 이때 아크나톤이 지었던 아톤 신전의 잔해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제2 탑문 앞에 서 있는 거상은 람세스 2세의 석상입니다. 석상의 다리 앞에 있는 작은 석상은 람세스 2세의 장녀 빈트 아나트의 석상이라고 합니다. 람세스 2세는 8명 이상의 왕비와 수많은 첩, 그리고 수백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합니다.

 

 

 제2 탑문을 통과하여 수많은 기둥들이 서 있는 대열주실 (Great Hypostyle Hall)로 들어갑니다. 

 

 

 정말 거대한 홀로 관광객들을 압도합니다. 길이 103미터, 폭 52미터의 거대한 홀로 16열의 134개의 기둥들이 있습니다.

 

 

 높이 23 미터에 이르는 중심 기둥 12개와 높이 15 미터, 둘레 8 미터 122개 원기둥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든 기둥들이 섬세한 부조 장식과 이집트 상형문자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부조와 비문에는 제물을 바치는 파라오에 대한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원래는 신전의 기둥 위에 지붕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무너져 내렸습니다. 

 

 

 남아 있는 지붕에도 새겨진 섬세한 부조의 모양이 보입니다. 

 

 

 상형문자와 그림이 새겨진 부조는 원래 모두 색이 칠해져 있었고 자세히 살펴보면 일부 도색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광대한 홀은 아멘호테프 3세, 람세스 1세, 세티 1세, 그리고 람세스 2세에 의해 건설되었습니다.

 

 

 대 열주실 벽면에도 상형문자와 그림이 새겨진 부조가 있습니다.

 

 

 이 벽에 역사적인 사건을 새긴 부조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세티가 승전하는 장면과 람세스 2세가 카데시 전투에서 히타이트족을 격파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경청하고 있습니다.

 

 

 아멘호테프 3세가 건설했으나 일부분만 남아 있는 제3 탑문과 제4 탑문 사이에는 투트모스 1세의 오벨리스크가 보입니다.  투트모스 1세의 오벨리스크 옆에 보이는 것은 높이 30 미터에 이르는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입니다. 이집트에서 가장 큰 오벨리스크로 원래 한 개가 더 있었지만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원래 이 자리에는 투트모스 1세와 투트모스 3세가 각각 3개씩 만들어 놓은 여섯 개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었습니다. 현재에는 투트모스 1세의 오벨리스크 하나만이 남아 있는데 높이가 22미터, 무게가 140여 톤에 이릅니다.

 

 

 온전한 모양으로 남아 있는 파피루스 모양의 기둥들입니다.

 

 

 카르나크 신전의 가장 안쪽에는 투트모시스 3세의 축제전 (Great Festival Temple of Thutmossis III) 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병사들이 사용하는 야외용 천막의 기둥을 본떠서 만든 돌기둥이 있습니다. 투트모스 3세는 시리아-팔레스타인 등지로 원정을 하면서 전장에 오랫동안 있었던 파라오였습니다.

 

 

 시간이 없어 내부는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만 축제전의 벽에는 각종 식물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나일강의 범람과 국가의 풍요를 기원하며 축제를 벌이던 장소입니다.

 

 

 신전의 동쪽 끝에 위치한 람세스 2세 기둥들입니다. 

 

 

 신전 동쪽 바깥쪽에는 폐허가 된 건물 뒤로 문이 보입니다.

 

 

 폐허 뒤로 동쪽 람세스 2세의 신전 (Estern Temple of Ramesses II)과 문이 보입니다. 

 

 

 신전 남동쪽에서 바라보니 제1 탑문과 높이 23 미터에 이르는 중심 기둥 12개와 높이 15 미터, 둘레 8 미터 122개 원기둥이 구별되어 잘 보입니다. 좌측 하단에 보이는 곳은 카페입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낮은 벽은 Girdle Wall of Ramses II이라는 신전 외벽입니다. 원래는 높은 벽이었으나 무너져 내려서 지금은 벽 옆에 그 잔해가 쌓여 있습니다.

 

 

 신전 남쪽의 호수입니다. 멀리 7-10번 탑문과 제9 탑문을 재조립하기 위해 설치한 크레인이 보입니다.

 

 

 이 호수는 길이가 200 미터, 너비가 117 미터인데 신전에 부속으로 지어지는 종류의 호수들 가운데에 규모가 가장 큽니다. 신전 내부에 만들어진 신성 호수들은 태초의 바다인 ‘눈(Nun)'을 상징합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신전의 사제들은 하루에 두 번씩 이 호수에서 목욕을 하며 자기 자신을 정화하였다고 합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탑 문의 훼손상태가 심합니다.  제8 탑문은 하트셉투스에 의해 지어졌고 제 9, 10 탑문은 파라오 호렘헵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호렘헵은 아크나톤의 흔적을 지우려는 노력이 많이 했는데 아크나톤이 카르나크에 지었던 아톤신전을 해체해서 탑문을 만드는데사용했습니다.

 

 

 쇠똥구리 석상 (Giant Scarab)입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석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대 이집트에서는 쇠똥구리는 태양의 신 라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시간 반 정도 신전 관람을 마치고 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갑니다. 룩소르에서의 마지막 유적 탐방이었습니다. 카르나크 신전은 방대하기 때문에 신전을 자세히 구경하려면 사전에 신전에 대한 공부를 하고 와야 합니다. 모래 밑에 묻혀 있었던 카르나크 신전 발굴은 1895년 프랑스의 이집트 학자 조르주 루그랑의 지휘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카르나크 신전에 대한 조사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지만 엄청난 넓이 등으로 인해 아직 10퍼센트밖에 발굴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 광장 서쪽으로 멀리 나일강 서쪽의 산이 보입니다.

 

 

▼ 저곳에는 오전에 관람했던 하트셉투스의 장제전과 왕가의 계곡, 왕비의 계곡, 귀족들이 무덤 등이 있는 네크로폴리스가 있습니다. 

 

 

▼ 정오경인데 생각보다 관광객을 태우고 온 버스가 많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