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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by G-I Kim 2022. 12. 28.

▣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22년 10월 25일부터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 성황리에 개최 중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 함께 개최한 특별전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600년간 유럽을 장악한 제일의 명문가로 세계 거장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후원해 왔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빈박물관 소장품 96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탄절 전날 한파가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 이례적인’ 흥행을 하고 있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을 보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 성탄절 전날 정오경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은 주최 측인 국립중앙박물관도 예상치 못하게 ‘이례적인’ 흥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표를 구입하면 입장까지 한참 기다려야 합니다. 30분 단위로 회차를 구분해 입장객 수를 제한하여  회차별 입장 가능한 인원은 150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전 인터넷 예매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현장 판매분을 구매하는 경우 매표소 앞에서 길게 줄을 서야 합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날씨가 추워서 전시회에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 인터넷으로 온라인 사전 예매를 했기 때문에 대기하지 않고 전시장에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기획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면 입장권을 확인하는 별도의 책상이 있는데 매 시각 30분 이곳에서 표를 확인하고, 함께 입장하는 방식입니다. 관람객이 많지 않아서 빨리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디오 가이드를 3000원에 대여할 수도 있고 스마트폰으로 ‘가이드온’ 앱을 미리 다운로드하고 전시탭에서 합스부르크전을 선택해 이용하여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 기획전시실 입구 앞에는 기념품점과 대기 의자 그리고 100개의 물품 보관함이 있습니다. 두꺼운 옷과 가방은 이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빈 물품 보관함을 찾아서 보관할 물건을 넣은 후 물품 보관함에 붙은 검은색 도어를 손으로 쓸어 내리면 숫자가 나타나는데 4자리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됩니다. 우리도 이곳에 가방을 보관하고 기획전시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럽의 역사에 가장 영향력을 미쳤던 명문가입니다. 13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배출한 이후 15~20세기 초까지 600여 년간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 영토를 다스렸던 황제 가문입니다.

 

 

▲ 합스부르크 가문은 10세기경 스위스 산악지역의 작은 봉건영주에 불과했습니다. 11세기에 들어서자 스위스에 ‘매의 성’이라는 의미를 지닌 ‘합스부르크 성’을 쌓으면서 성장하기 시작했고 후손이 독일 국왕으로 선출되기까지 했습니다. 1273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루돌프 1세가 독일 선제후들에 의해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어 왕가의 계보가 시작됩니다.

 

막시밀리안 1세의 초상화, 베른하르트 슈트라젤 원작을 모사

▲ 15세기 말에 막시밀리안 1세가 합스부르크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습니다. 에스파냐 왕실과 정략 통혼하여 영향력과 지배영역을 확대했는데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인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 때 제국은 최대 영역을 지배했습니다. 베른하르트 슈트라젤의 제자가 그린 초상화로 1508년 이전에 그려졌으며 갑옷을 입은 황제의 초상화입니다.

 

막시밀리안 1세의 갑옷, 로렌트 헬름슈미츠, 1492년 경
뷔르뎀베르크 율리히 공작의 세로 홈 장식 갑옷, 1525~1530년 경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독수리 장식 갑옷, 와르크 조지젠호퍼(1528~1580), 1547년
루돌프 2세의 리본장식 갑옷, 안톤 페펜하우저, 1571년

▲ 개인적으로 전시장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은 갑옷들입니다. 유럽 여행을 가도 보기 힘든 정교한 모양의 갑옷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중세시대의 갑옷은 남자들이 소유할 수 있는 최고로 비싼 물건이었으며 정치적, 군사적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갑옷 표면에 새겨진 문양과 섬세한 주름이 마치 아름다운 의복을 연상케 하는데 실제로 갑옷은 당시 유행한 패션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좌측) 루돌프 2세 초상화, 마르티노 로타, 1576~1580년경, (우측 상) 누워있는 비어스와 큐피드, 1600~1620년 (우측 하)&nbsp;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이야기가 있는 접시

▲ 루돌프 2세 (Rudolf II, 1552년 7월 18일, 빈 - 1612년 1월 20일, 프라하)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왕, 헝가리 왕국의 왕인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입니다. 문화적으로 많은 치적을 남겼지만 병약하고 무능, 나태한 심성 때문에 말년에 인심을 잃어 모든 작위를 잃고 프라하의 궁정에 유폐되었습니다. 루돌프 2세는 예술과 건축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당대의 뛰어난 예술품들을 수집하고 궁정 화가들을 고용하기도 합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예술에 대하 사랑과 수집은 이때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수집품들의 대부분은 1648년 프라하의 서부가 스웨덴군에 함락된 후 전리품으로 빼앗아 갔다고 합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전쟁 선포, 한스 폰 아헨, 1603~1604년

▲ 1603~1604년경에 그려진 한스 폰 아헨(1552~165)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의 전쟁 선포' 라는 그림입니다. 루돌프 2세 환제 당시에 있었던 합스부르크와 오스만 제국 사이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그림입니다.  합스부르크 군주국과 오스만 제국은 1526년부터 1791년까지 전쟁을 했는데 이를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이라고 합니다.  신성 로마 제국, 합스부르크 스페인, 헝가리 왕국이 합스부르크 군주국을 지원했습니다. 트란실바니아와 보이보디나를 포함한 헝가리, 크로아티아 왕국, 중부 세르비아가 주요 전장이었지만 레판토 해전이나 몰타 공방전처럼 지중해를 비롯한 해전도 있었고,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수도인 빈도 두 차례나 포위당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합스부르크 군주국이 승리하고 오스만 제국의 팽창 저지했지만 러시아의 개입으로 발칸 반도 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합스부르크 군주국과 오스만 제국의 쇠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좌측)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초상화, 16세기 후반 (우측 상) 야자열매 잔 (우측 하) 야자열매 주전자

▲ 밀리터리 덕후이며 전쟁광이었던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은 취향이 독특해서 세계적으로 희귀한 소재의 예술품을 많이 모았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야자열매 주전자와 잔입니다. 야자열매는 16세기 바다에 둥둥 뜬 채로 유럽 사람들에게 처음 발견되었는데 굉장히 귀한 소재로 각광받습니다. 특히 야자열매를 소재로 해서 금세공을 추가한 공예품은 고가의 예술품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이런 야자열매를 소재로 한 공예품이 총 6점 남아 있는데 2점을 이번 전시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 인스부르크 외곽에 있는 암브라스 성(Schloss Ambras)은 11세기에 처음 지어졌지만 16세기 후반에 페르디난드 2세가 그의 평민 출신 아내인 필리피네에 게 결혼 선물로 주면서 개축되었습니다. 페르디난드 2세는 엄청난 수집광으로 이 곳을 직접 박물관으로 만들었습니다. 현재 르네상스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콜렉터인 페르디난트의 수집품은 거의 빈 박물관 등으로 옮겨졌습니다. 

 

▲ 오타비오 바니니(1585~1643년경)의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셀' 이라는 작품(1625~1626년)입니다. 오타비오 바니니는 17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화가입니다. 이 시기 서양 회화 대부분이 사실적이지만, 그 중에서도 바니니의 그림은 특출난 생동감을 자랑합니다. ‘우물가의 리브가와 엘리에셀’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입니다. 아브라함은 시종 엘리에셀에게 자신의 아들 이삭의 신붓감을 골라오게 시켰고, 엘리에셀은 신의 계시로 우물가에서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와 마주칩니다. 바니니는 주인공들의 고전주의 조각상 같은 자세와 강렬한 색채를 통해 고요한 계시의 순간을 묘사했습니다. ‘르네상스의 주역’ 메디치 가문은 바니니의 가장 큰 고객이었는데 이 작품은 1625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레오폴트 대공에게 시집가는 클라우디아 데 메디치의 혼수품으로 제작돼 162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좌측) 펠리페 4세의 초상화 (우측) 레오폴드 빌헬름 대공으 초상화

▲ 펠리페 4세(1605~1665년)와 레오폴드 빌헬름 대공(1614~1662년)은 인스부르크가 아닌 빈이 예술의 중심지가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당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아서 빈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펠리페 4세는 스페인 국왕, 포르투갈 국왕, 나폴리 국왕, 시칠리아 국왕으로 위 후로 정치에 관해서는 대부분을 자신의 시종 출신인 올리바레스 백작에게 일임하였고, 본인은 예술가들을 육성하고 후원하는 데 매진했습니다. 그의 방대한 미술 컬렉션은 현재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레오폴드 빌헬름 대공은 페르디난트 2세의 아들로 신30년 전쟁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군대를 지휘했으며 후에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이 되었습니다. 평생 독신이었던 그는 왕성하게 예술 후원 활동을 하며 1,400점 이상의 회화 작품을 수집하였습니다. 

 

▲ 이번 전시회의 대표적인 작품인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입니다.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의 어머니는 페르디난트 3세 황제의 딸로 오스트리아 황제가 테레사 공주의 외조부였습니다. 테레사 공주는 페르디난트 3세의 아들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하기로 돼 있었는데 페르디난트 3세는 손녀이자 며느리가 될 테레사 공주가 잘 성장하고 있는지 벨라스케스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빈미술사박물관에는 테레사 공주의 3세, 5세, 7세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 5세의 테레사 공주의 초상화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 궁정화가 ​​다비트 테니르스 2세의 브뤼셀​의 레오폴드 빌헬름 주교 대공의 화랑 (Archduke Leopold Wilhelm and the artist in the archducal picture gallery in Brussels)이라는 1651년 작품입니다. 현재 미국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데 레오폴드 빌헬름 대공이 모은 많은 작품들을 그렸습니다. 저 작품의 화랑 상단에는 파올로 베로네세의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작품이 보입니다. 

 

▲  파올로 베로네세의 '동방박사의 경배'는 성경 속 3명의 동방박사를 묘사한 작품으로 16세기 베네치아에서 인기가 많았던 주제이었습니다. 

 

▲ ‘산 풍경’은 16~17세기 플랑드르 지역의 풍경화 1인자였던 요스 데 몸퍼르 2세(1564~1635)가 원숙기에 접어든 1620년대 그린 작품으로 가로 286 센티미터, 세로 209 센티미터 이르는 대작입니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이 수집한 그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전경(前景)과 중경(中景), 원경(遠景)을 확실히 구분했지만 부드러운 색채와 구성으로 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했습니다. 산맥은 역동적으로 묘사돼 있으며 감각적인 빛 묘사는 150여 년 뒤 출현할 인상주의를 연상시킵니다. 이 그림은 몸퍼르 2세가 1580년대 스위스 여행에서 본 생고타르 고개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 바로크 미술의 거장 피터르 파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그리스 로마신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려졌습니다. 주피터와 머큐리, 즉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프리기아라는 마을을 찾았습니다. 마을사람들에게 하룻밤 숙박을 요청하는데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허름한 나그네 차림의 신들을을 문전 박대했지만 필레몬과 바우키스 부부는 이들을 정성껏 대접하였습니다. 그들이 가진 가장 좋은 포도주와 과일을 내왔는데요, 아무리 포도주를 따라도 그 양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필레몬이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는데, 이는 눈앞의 사람들이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바우키스는 거위라도 잡아 신들에게 대접하려 하지만 주피터는 한 손을 들어 제지하고 있습니다. 

 

▲ 실제로 도구가 손에 잡힐 듯 사실적인 세부 묘사와 명암법으로 그려진 작품은 요하네스 레이만스(1633~1688)의 ‘사냥 도구’입니다. 이 그림은 당시 유럽에서 유행한 ‘트롱프뢰유’라는 눈속임 기법으로 그려졌습니다. 트롱프뢰유는 실제와 분간이 어려운 착시효과를 유발하는 사실적인 묘사가 특징입니다. 사냥은 이 작품이 그려질 당시 네덜란드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림 주제였다고 합니다.  귀족들과 부르주아 계층은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사냥을 즐겼는데 이 중 매 사냥이 가장 고상한 취미였습니다.  작품 가운데 있는 작은 새장과 오른쪽에 있는 주름진 가죽 주머니는 매의 미끼를 담을 때 쓰였으며 상단부에 있는 호루라기는 다른 새들과 동물의 울음을 흉내 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사냥용 나팔, 사냥개를 위한 목줄 등도 그려졌습니다.

 

 

뤼카스 판 팔켄보르흐 (Lucas van Valckenborch, 1530/1535 ~1597)의 제철소와 도둑이 있는 산 풍경(Mountain landscape with assault by robbers and stucco oven, 1585)라는 작품입니다. 그림의 좌측 하단에는 강도들을 피해 달아나는 공포에 질린 짐꾼이 그려져 있고 가운데 작은 섬에는 용광로가 있는 소규모 제철소가 보입니다. 16세기 후반 알프스 산맥에는 1,200여개소의 제철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뤼카스 판 팔켄보르흐는 16세기에 활동했었던 벨기에 화가로, 플랑드르 화파와 메헬렌 화파에 속합니다. 팔켄보르흐는 작은 크기의 인물이 함께 그려진 풍경화를 주로 그렸으며 지형적인 특징을 표현하는 데 특출났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를 절대주의적 근대국가로 확립시킨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년)와 그녀의 딸이며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가 되었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 처형당한 마리 앙투아네트(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 1755~1793)의 초상화입니다. 

▲ 금 세공인이자 판화가인 요한 안드레아스 텔로트(1655-1734)가 만든 아폴로와 다프네 이야기가 있는 황금 술잔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아폴로와 다프네의 비극적 이야기를 부조로 새겨넣었습니다. 태양신 아폴로는 큐피드의 황금 화살에 맞아 님프 다프네에게 한눈에 반하는데 상대방을 싫어하게 만드는 큐피드의 납 화살에 맞은 다프네는 아폴로를 피해 달아납니다. 아폴로가 다프네를 따라잡은 순간, 다프네의 아버지 페네오스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월계수 나무로 만들어버렸다고 합니다. 

 

카를 6세의 황후가 소유했던 셔벗용 식탁 장식(1736-1740)입니다.  손잡이 기둥에 달린 여섯개의 고리에는 조가비 장신구로 장식된 셔벗 그릇이 달려 있습니다. 고리 끝 장식에는 황제부부와 마리아 테레지아를 포함한 세 딸, 그리고 사위 프란츠 슈테판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요한 카를 아우어바흐(1723~1786)가 1773년 그린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이라는 작품입니다.  1766년 4월 2일 오스트리아 빈의 호프부르크 왕궁 레오폴트관에서 열린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과 작센 공작 알베르트의 약혼 축하연을 그린 작품입니다. 가로 1.9 미터, 세로 2.3 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기록화입니다. 그림을 보면 축하연 자리에 착석한 왕족들 주변으로 특별히 선발된 영예를 안은 검은 차림의 귀족들이 호화로운 음식을 나르고 있습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작센의 공작 알베르트와 연애결혼을 하고자 했으나 아버지 프란츠 1세는 이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1765년 프란츠 1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약혼식은 이듬해에 이루어졌습니다. 연회장 뒤에 쳐진 검은 천막은 프란츠 1세를 추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행사의 목적은 황실의 가족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는 2코스에 76가지 음식이 나온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로 음식을 먹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와 그의 아내인 시시(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1837~1898)의 초상화입니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초상화에는 거대한 제국을 68년이나 다스렸던 황제의 위엄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근면 성실한 태도와 엄격한 통치로 제국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 두려움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입니다.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황후 시시의 초상화는 그녀가 21세 때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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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1세 초상 건너편에는 그의 맞수였던 신성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프란츠 2세(1768-1835,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1세)의 7세 때 초상이 걸려 있습니다.  그의 할머니이자 오스트리아의 국모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제작을 의뢰한 초상화에는 당시 신지식을 상징하는 지구본이 담겼습니다.

 

▲ 튀니지왕 시디 모하메드 2세(1855-1859)가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로 보낸 수석총(1857년 제작) 입니다. 총신은 음각, 도금, 물결문양 금상감으로 장식되어 있고 손잡이는 술 장식이 달린 빨간색과 금색의 실크끈으로 감았습니다.

 

130년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동아시아에 구축할 새로운 거점 가운데 하나로 한국을 고려해서 대형 이양선을 끌고 조선을 찾았습니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항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1892년 조선과 오스트리아가 수호통상조약을 맺게 됩니다. 이 조약은 최혜국 대우, 치외법권 인정 등이 포함된 불평등 조약이었지만 고종은 수교를 기념하기 위해 1893년 조선을 방문한 보호 순양함 카이세린 엘리자베스(SMS Kaiserin Elisabeth)호를 통해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에게 조선의 갑옷과 투구를 선물로 보냈습니다. 갑옷과 투구에는 비와 구름을 의미하는 용이 그려져 있으며 농경사회에서 풍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갑옷과 투구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수집품으로 등록돼 빈미술사박물관에 보관되었다가 이번에 전시되었습니다. 

 

▲ 전시장 관람은 대략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소용됩니다. 미리 합스부르크 왕가 등 전시회 내용에 대해서 알아 두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 우리가 전시회 관람을 마치고 나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위해 줄을 서 있었습니다.

 

▲ 전시회 기념품샵에는 국내에서 제작한 굿즈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에서 공수해온 물건들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 서적 2권을 포함한 굿즈 들을 구입했습니다. 비운의 오스트리아 황후 시시(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초상화가 그려진 파일 홀더는 빈미술사 박물관 제품을 수입한 것으로 국산에 비해 고가입니다.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출간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100배 즐기기' 라는 책은 내용이 충실해서 전시회를 관람하기 전에 미리 한번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싸일러 용산(Sailer Yongsan), 오스트리아 전통 전통 베이커리, 용산센트럴파크

▣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했을 때 기억이 남는 음식 중에 하나는 우리나라에서는 비엔나 커피라고 불리는 아인슈패너 커피(Einspanner Coffee)입니다. 얼마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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