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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터키

터키여행 Day 7 (7)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박물관 (Istanbul Ayasofya Müzesi)

by G-I Kim 2019. 4. 24.




아야 소피아(Ayasofya)는 하기아 소피아, 성 소피아 사원, 성 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대성당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 동로마 제국 건축의 최고 걸작이자 동방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곳입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지만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티움 건축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물입니다.  로마 제국의 건물이며 기독교의 문화유산이지만 500년 가까이 개보수를 거치며 이슬람교 신자들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아야 소피아 박물관 입구는 아야 소피아의 남서쪽에 있습니다. 여기서 입장권을 구입한 뒤 줄을 서서 입장합니다.

터키 이스탄불의 대부분의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금속탐지기에 의한 보안 검색을 마친 뒤에야 입장을 할 수 있습니다.

입구를 지나면 오디오 가이드 장비 대여소가 있습니다.



▼ 아야소피아에 입장을 하면 가장 먼져 보이는 것이 데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 401~450) 때 재건된 성당으 잔해입니다. 아야소피아는 330년 5월 11일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한 후 30년이 지난 360년 대제의 아들인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가 처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따라 황제 궁전과 전차 경기장 옆에 나무 지붕을 한 작은 교회로 처음 지어졌다고 합니다. 404년 동로마의 아르카디우스(Arcadius, 377~408)황제 때 화재로 무너졌다가 데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 401~450) 때 재건되었습니다. 그때 교회의 잔해가 남아 있어서 아야 소피아 한쪽 마당에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  아야 소피아는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일어난 ‘니카의 반란’으로 다시 파괴되었습니다. 니카의 반란은 유스티니아누스황제 때 발생했는데 유스티니아누스황제는 과거 로마시댕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많은 정복전쟁을 일으켰고 국고가 바닥나고 막대한 세금을 걷자 동로마인들의 불만이 터져 일어난 반란입니다. 반란군의 기세에 눌린 유스티니아누스황제는 난을 피해 콘스탄티노플을 떠나려 했지만 황비 데오도라가 저지했고 유스티니아누스황제는 경기장인 히포드롬에서 농성하는 3만 명의 반란군을 모두 살해하면서 진압에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번째로 아야소피아가 파괴되었는데, 유스티니아누스황제는 그 잔해 위에 황제의 권위와 교회의 영광에 어울리는 새로운 성당을 세우게 됩니다.



▼ 아야소피아는 558년에 무너졌다가 재건될 때 돔을 7미터가량 더 높여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히후 수차례의 지진에 의해 일부가 무너지고 재건되었습니다. 1453년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이후 보강공사를 한 후에 성당에 첨탑을 네 개 추가해 모스크로 탈바꿈시키면서 아야소피아는 대표적인 이슬람 신전이 되었습니다. 이후 아야소피아를 모델로 수많은 이슬람 신전안 모스크가 건축되었습니다.






▼ 아야 소피아 외관은 보면 외부로 튀어나온 벽들이 보이는데 1317년에는 북쪽과 동쪽 측면에 추가한 버팀벽이라고 합니다.

버팀벽 뒤로 오스만 제국이 모스크로 사용하기 위해 추가한 첨탑도 보입니다.



▼ 본당으로 들어갈때는 두개의 회랑을 지나가데 됩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벽돌로 만든 평범한 회랑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천장이 금색으로 반짝이는 회랑이 나타납니다. 실제 얇은 금편이 들어간 모자이크용 유리와 각종 색이 들어간 유리등으로 벽과 천장을 만들었습니다. 비잔틴 미술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하네요. 원래 아야소피아에는 각종 금과 보석들로 치장이 되어 있었는데 비잔틴 제국 1000년 동안 재정이 궁핍할 때 떼어다 사용했으며 4차 십자군 전쟁때 십자군들이 마구 약탈해 갔다고 합니다.



▼  황제 전용 문이라고 하는 중앙의문들 통해 본당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문 위에는 예수를 중심으로 성모 마리아와 천사 가브리엘, 그리고 비잔틴 황제인 레오 6세가 등장하는 모자이크화가 있습니다.

관심있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 중앙 돔은 지름 31미터 높이 55 미터 규모가 매우 크며, 4개의 거대한 다리가 돔을 받치고 있습니다. 돔 천장에는 아랍어로 된 코란 구절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된 후 19세기경에 쓰여졌다고 합니다. 비잔틴 양식을 특징짓는 펜던티브 돔(pendentive dome)으로 정방형 평면 위에 원형 돔을 얹을 수 있습니다. 




▼ 중앙돔의 앞쪽으로 미흐랍(Mihrab) 위에 있는 반원형 돔의 가운데에는 성모자의 상(Apse mosaics)이 그려져 있습니다. 현존하는 모자이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성모의 키가 무려 5미터라고 합니다.  



▼ 반원형 돔 사이에는 미카엘 천사의 모자이크도 있습니다. 아야소피아 전설 당시 유스티니아누스황제는 황제의 권위와 교회의 영광에 어울리는 새로운 성당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트랄레스의 건축가 안테미우스(Anthemius)와 밀레토스의 수학자 이시도레(Isidore)에게 성당 건설을 명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천사에게 설계도를 받은 유스티니아누스황제가 안테미우스와 이시도레에게 다른 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신성한 공간, 즉 비잔티움의 종교 의식과 국가 중요행사를 성대하게 치를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는 미흐랍(Mihrab)은 원래 성당이었던 곳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면서 약간 옆으로 틀어진 상태입니다. 



▼ 미흐랍 옆에 민바르(Minbar)라는 설교대가 있는데, 이 설교대 계단 위에 이슬람 종교 지도자인 이맘(imām)이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 아야 소피아에는 모자이크 문양의 창문들이 있어 자연스럽게 채광이 되는 구조입니다.



▼ 중앙돔에 그려 넣은 이슬람 캘리그라피(calligraphy) 이외에도 2층의 벽에 걸린 이슬람 캘리그라피 원판들이 보입니다.  모두 8개의 캘리그라피 원판이 걸려 있는데 술탄 압뒬메지트 1세 때의 만들었다고 합니다. 직경이 7미터가 넘는 커다란 크기인데  이슬람세계에서 가장 큰 캘리그라피 원판이라고 합니다. 



내부 바닥에는 세계의 중심을 상징하는 옴팔리온이 있는데 옴팔리온은 그리스어로 배꼽이라는 뜻입니다. 원형 대리석들이 바닥에 끼워져 있는 형태이고 동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가 이 자리에서 대관식을 거행했습니다.



▼ 일층에서 올려다보이는 2층 갤러리의 모습들입니다. 거대한 돔구조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들이 보입니다.



▼ 층계와 비탈길을 따라 2층 갤러리로 올라갑니다. 



▼ 2층 갤러리로 올라가니 대리석 기둥과 반원형 천장이 나타납니다. 

정말 웅장한 구조의 성당입니다. 테살리안식 대리석 기둥이 매우 특징적입니다.




▼ 아야 소피아의 유명한 2층 갤러리 모자이크를 보기 위해 이동합니다. 이동하는 쪽으로 대리석문이 보입니다. 



▼ 2층 갤러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일층의 모습입니다. 옴팔리온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천장에 화려한 모양의 조명등이 매달여 있습니다. 




▼ 2층 갤러리 중간에 있는 대리석 문입니다. 이 곳을 지나가면 모자이크가 있는 곳이 나옵니다. 



▼ 2층 갤러리의 모양은 매우 화려합니다. 대리석 기둥의 문양도..




▼ 2층의 대리석 문을 통과하면 데이시스, 심판의 날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데이시스'란 간청, 애원을 뜻하는 단어로, 심판자 그리스도가 죄인의 벌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을 거느린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1261년에 제작되었습니다. 



▼  2층 남쪽 회랑에는 황후 조에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황후 조에(재위 1028 ~1050년)와 그 남편 콘스탄티노스 9세 (재위 1042 ~ 1055년)의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11세기에 제작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스가 들고 있는 돈자루는 교회에 대한 황실의 기부를 상징합니다. 황후 조에는 결혼을 3번 했는데 남편이 바뀔 때마다 이 모자이크의 남편 얼굴과 문구도 바뀌었다고 합니다.




▼ 2층 남쪽 회랑에는 콤네노스 황제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요한네스 2세 콤네노스 황제 (재위 1118 ~ 1143년)와 이레네 황후, 황태자 알렉시우스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로 부터 축복을 받는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1122년에 제작되었습니다.




▼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아야 소피아와 관련된 각종 문양과 그림들...





▼ 아야 소피아 성당의 1층으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오른편에는 ‘촉촉한 기둥(땀흘리는 기둥)’이 있습니다. 기둥에 구멍이 뚫려 있는데, 엄지손가락을 넣고 한 바퀴 돌리면서 소원을 비는 곳이기도 합니다. 




▼ 아야소피아 내의 기념품점입니다. 상당한 고가의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금색으로 된 모자이크 성화 액자, 책자들이 있습니다.




▼ 남서문쪽 위에는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와 좌우의 황제가 그려진 10세기경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오른쪽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포리스를, 왼쪽의 유스타니아누스 황제는 아기아 소피아를 봉헌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원래 이와 같은 성화 모자이크들은 모두 20세기 복원된 것들입니다.

1453년 5월 29일 메흐메트 2세가 이끌던 오스만 제국에게 비잔틴 제국이 멸망할 때 아야 소피아성당도 파괴될 위기에 처했으나 메흐메트 2세는 이 성당만은 남겨두라고 엄명을 내리고 말에서 내려 성당 안을 보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이후 하기아 소피아는 아야 소프야라는 이름을 그대로 보존한 채 황실 모스크로 개조하고 내부의 모자이크에 회칠을 하여 성화들을 가리며 건물 자체는 그대로 남게 되었으며, 모스크로 활용하기 위해 바예지트 2세때 첨탑인 미나렛을 하나 세우고, 셀림 2세때 미나렛 세개를 더 증축했습니다. 20세기부터 시작된 복원 작업으로 몇몇 모자이크가 다시 세상에 드러났지만, 회칠하고 역시 5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문화재인 이슬람 문양을 제거하는 데 따른 반발이 커 이 작업은 80년 넘게 중단된 상태이라고 합니다.





▼ 이슬람시대에 추가된 술탄 마흐무드 1세(Sultan Mahmud Ⅰ) 시대에 만들어진 분수가 보입니다. 8개의 기둥과 아치 그리고 금 장식으로 만들어진 오스만 시대의 멋있는 분수입니다.



▼ 아야 소피아 마당에 있는 성당 내부의 안내도입니다.



아야 소피아 마당에는 간단한 음식을 판매하는 카페가 있습니다. 



▼ 상당한 규모의 기념품점이 있습니다. 로쿰같은 먹거리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선물용으로 적당한 물건들이 많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