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시아여행/베트남

베트남 북부 여행 2일 (3) 바딘 광장, 호찌민 영묘와 대통령궁 유적

by G-I Kim 2021. 11. 1.

▣ 바딘광장은 하노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광장 사방으로 대통령궁, 국회의사당, 관공서를 비롯하여 외국대사관 등이 밀집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곳은 호찌민의 영묘(Mausoleum)로 방부 처리된 호찌민의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줄을 섭니다. 호찌민의 영묘 뒤편에는 베트남 전쟁 당시 호찌민의 집무실과 집기들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으며 1900년경에 인도차이나로 파견된 프랑스 총독을 위해 지은 식민지 시대 대저택인 주석궁이 있습니다. 바딘 광장은 2차 대전 때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직후인 1945년 9월 2일 독립운동가 호찌민이 독립선언을 한 곳입니다.

 

하노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바딘광장, 2017년 2월

하노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바딘광장은 상당히 넓습니다.  2차 대전 때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직후인 1945년 9월 2일 독립운동가 호찌민이 독립선언을 한 곳으로써 <9.2 광장>이라고도 합니다. 광장 사방으로 호찌민의 영묘, 대통령궁, 국회의사당, 관공서를 비롯하여 외국대사관 등이 밀집해 있습니다. 

 

 2 015년 9월 2일 독립 70 주년을 기념하여 바딘광장에서 개최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의 모습

매년 9월 2일 베트남 독립기념일에는 이곳에서 경축행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위 사진은 2015년 9월 2일 독립 70 주년을 기념하여 바딘광장에서 했던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의 모습입니다. 

 

바딘 광장의 국기 게양대는 호찌민 영묘를 지키는 호위병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바딘 광장 호찌민 영묘 동쪽으로 29미터 높이의 국기 게양대가 있습니다. 2001년 호찌민의 111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이곳에서 국기 게양식을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기 게양식은 호찌민 영묘를 지키는 호위병 37명(2명의 장교 포함)에 의해 이루어지며 3명이 국기의 게양과 하강에 참여합니다. 게양식 와 하강식을 할 때에는 광장의 모든 사람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게양대를 바라보게 됩니다. 게양식은 여름(4월 1일~10월 31일)에는 오전 6시, 겨울(11월 1일~3월 31일)에는 오후 6시 30분에 하는데 게양식이 시작할 때 호찌민 영묘의 문이 열립니다. 국기 하강식은 오후 9시에  진행됩니다.

   

바딘 광장의 호치민 영묘는 호찌민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입구의 자주색 조각을 제외하고는 장식을 최소화하여 단순하고 엄숙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입구에 는 항상 호위병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2017년 2월
바딘 광장의 호찌민 영묘는 1975년에 완성되었고 모스크바의 레닌 묘를 참조하여 만들어졌습니다.  2017년 2월

호찌민의 영묘는 베트남이 통일된 이후 모스크바의 레닌 묘를 참조하여 만든 건물입니다. 검은 대리석으로 기단 위에 짙은 갈색 대리석으로 만든 사각형의 웅장한 건물을 올리고 20개의 주홍색 대리석 기둥을 세운 연꽃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호찌민은 그토록 열망하던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1969년에 사망했는데 화려한 장례식으로 낭비하지 말고 화장하여 재를 3 등분하여 북부, 중부, 남부에 골고루 뿌려줄 것을 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소원과 달리 자신들의 영웅을 위해 이와 같이 거대한 영묘(호찌민 마우솔레움, Ho Chi Minh Mausoleum)를 지었습니다. 영묘는 통일 후 1973년부터 1975년에 걸쳐 조성되었으며 전국 각지에서 모은 재료로 건축되었습니다. 대리석 입구 복도를 지나 들어가면 호찌민이 생전에 가장 자주 인용했던 <자유와 독립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유리 상자 안에 낡은 황갈색의 옷을 입은 채 누워 있는 호찌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방이 나옵니다. 정교하게 방부 처리된 시신은 매년 3개월간 러시아로 보내져 지속적으로 정비와 보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호찌민의 관저를 방문하기 위해서 길게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 2017년 2월

호찌민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존경심과 사랑은 대단해서 현재도 호찌민이 베트남의 실질적인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영묘는 베트남 전국 각지에서 온 참배객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거의 항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수많은 베트남인들이 참배하러 오기 때문에 정숙을 유지하며 두 줄로 서 입장해야 합니다. 반바지나 짧은 치마, 민소매, 슬리퍼 차림으로는 입장이 제한됩니다. 또한 내부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가방과 카메라 등 소지품을 맡기고 검색대를 통과하는 등 엄격한 규정을 따라야 하고 영묘 내부에서는 경건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바딘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호찌민 영묘가 아니라 호찌민 관저를 관람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딘 광장을 방문한 때는 금요일이었는데 호찌민 영묘는 월요일과 금요일은 휴무이고 오전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개관합니다.

 

베트남 국회의사당, 2017년 2월

바단 광장 동쪽, 호찌민 영묘 건너편에 있는 베트남 국회의사당입니다. 국회의사당은 구상에서 건립까지 무려 15년(1999~2014년)이 걸려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지상 5층, 지하 2층의 건물로 중앙에 Dien Hong Hall이라는 원형의 회의실이 있습니다. 국회의사당 건설 전에 주변에서 베트남 고고학 연구소가 발굴을 했는데 수만 개의 벽돌, 기와, 나무, 도자기 및 도자기 유물이 발견되었고 국회의사당 건물 지하에 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이 박물관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으며 국회 업무와 관련된 전문가와 부서들만이 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은 일당제로 정당은 공산당 하나뿐이지만 494명의 국회의원 중에서는 무소속도 있습니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5년으로 86명은 소수민족입니다. 

 

호찌민 관저가 있는 대통령궁 유적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합니다.

호찌민의 영묘 뒤에는 호찌민 관저가 있는 대통령궁 유적이 있습니다. 4만 동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 입구는 주석궁 남쪽에 있습니다. 나무들이 있는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면 호찌민이 업무를 하던 관저와 1958년부터 1969년 사망 때까지 사용했던 작은 목조 주택을 볼 수 있습니다. 주석궁 뒤쪽에는 망고 나무 산책로가 있는데 호찌민은 이 산책로에서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베트남 주석 관저인 주석궁은 1900년대 초에 총독 관저로 지어진 건물로 호찌민은 이 궁에서 살거나 업무를 보지 않았으며 손님 영접만 했습니다.

망고 나무 뒤로  베트남 주석 관저인 주석궁이 보입니다. 이 건물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지어진 30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가장 큰 건물 중 하나로 1901년부터 1906년 사이에 건설되었습니다. 1945년 혁명이 발생할 때까지 29명의 총독들이 거주했는데 1954년부터 1969년까지 15년간 호찌민은 주석궁에서 국내외 대표단 1000여 명을 영접했습니다. 또한 호찌민 주석이 새해 첫날을 맞아 신년사를 낭독하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호찌민은 이 궁에서 살거나 업무를 보지 않았으며 손님 영접만 했습니다.

 

 호찌민이 1954년부터 1958년까지 업무를 보던 관저와 정치국 회의실, 호찌민의 의전에 사용되었던 3대의 승용차 전시장, 전시관이 있습니다. 호찌민은 허름한 집에서 거주할 때에도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위생시설을 이용했으며 1969년 이곳에서 요양하다가 사망했습니다. 

 

대통령궁 유적 내의 공작새 한쌍, 2017년 2월

공작새 한쌍이 새장 안에 있습니다. 공작새는 우리나라에서 많이 관상용으로 키우는 남아시아에서 키우는 인도공작과 동남아시아에 주로 분포하는 자바 공작이 있는데 저 새들은 자바 공작인 것 같습니다.  

 

대통령궁 유적 내의 연못, 2017년 2월

3,330 평방미터의 면적의 연못은 깊이가 3미터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방류하여 키우고 있습니다. 호찌민은 생전에 이 연못에서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고, 물고기가 노는 모습을 보는 것을 큰 낙으로 여겼다고 전해집니다. 

 

호찌민이 1958년부터 11년 동안 거주한 2층 목조 구조의 집 옆에는 난간을 설치하여 방문객들이 내부를 쉽게 볼 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2층은 침실과 사무실이 있으며 검소했던 호찌민의 생활상을 알 수가 있습니다.
1층의 집무실에서  호찌민은 회의와 손님접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습니다. 2층에는 침실과 사무실이 있습니다.

 호찌민이 1958년부터 11년 동안 거주한 2층 목조 구조의 집은 간소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1층은 집무실로 작은 식탁과 의자 몇 개가 놓인 것이 전부일 정도로 검소합니다. 이곳에서 호찌민은 회의와 손님 접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습니다. 2층에는 침실과 사무실이 있으며 작은 나무 책상을 비롯해 시계, 라디오 등 호찌민이 평소 사용했던 애장품들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두 간소한 것들로 서민과 다름없었던 그의 생활 습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건물의 원형은 따로 보존하고 있으며 호찌민 사망 후 1969년에 복원한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베트남 북부의 산간지방에 거주하는 8개의 소수민족의 주택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길이 10.5미터, 너비 6.2미터로 1958년 5월 1일에 지어졌습니다. 건축가 Nguyen Van Ninh가 설계를 했는데 호찌민이 출장을 가있는 동안 베트남 육군 공병 30명에 의해 급하게 건설되었습니다. 이 역사적인 건물은 1970년 이래로 전 세계에서 8천만 명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대통령궁 유적 내의 토산품 판매장, 2017년 2월

이곳에도 토산품 판매장(기념품 판매장)이 있습니다. 간단한 먹거리도 팔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자세히 둘러보지는 못했습니다.

 

이곳에는 넓은 정원과 과수원이 있는데 161종의 식물이 있습니다. 멀리 호찌민이 영묘가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