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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규슈

2014년 8월 일본 규슈서부 여행 (3일)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Nagasaki Atomic Bomb Museum, 長崎原爆資料館)

by G-I Kim 2016. 12. 24.




▼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Nagasaki Atomic Bomb Museum, 長崎原爆資料館, http://nagasakipeace.jp/)은 이차세계대전 당시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폭의 처참하고 끔찍했던 피해를 전시하는 장소입니다. 



▼ 자료관 앞에는 나가사키의 마스코트가 서 있습니다. 좀 엄숙한 분위기의 전시관 앞에 밝은 분위기의 마스코트가 서 있으니 안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이...



 ▼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입구 창문에서부터 보이는 엄청난 수의 종이학입니다.



▼ 2세 때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해 12세에 숨진 사사키 사다코(佐佐木禎子)가 백혈병 등으로 투병하던 중 '종이학 1000마리를 접으면 병이 나을 것으로 믿고 종이학을 접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채 천 마리를 채우지 못하고 964마리를 접고서 결국 숨을 거두었다고 하네요. 이후 종이학은원폭 피해를 알리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 저렇게 종이학을 접으려면 엄청난 정성과 시간이 걸렸을 것 같습니다.



▼ 안내소입니다.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은 나가사키 피폭 50주년 기엄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 4월에 그 당시 나가사키 피폭 자료를 전시하던 나가사키 국제 문화회관을 개축해서 개관하였습니다.



▼ 무료는 아니어서 소정의 입장료는 내야 하고 특이하게도 전시실 등 건물자체가 지하에 있습니다. 일반인은 200엔, 학생은 100엔으로 



▼ 전시실 입구에는 기획전시실의 전시물에 대한 포스터가 있습니다.



▼ 둥근 회전형 경사로를 따라 전시실이 있는 지하 2층으로 내려갑니다. 



▼ 내려나는 중간 창문으로 외부도 보이고 종이학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 한참 내려가야 합니다. 이런 구조를 선택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 경사로 중간에 전시되어 있는 대형 종이학...



▼ 작은 콘서트를 해도 좋을 정도의 공간입니다. 천장에서는 자연채광으로 빛이 내려옵니다.  




▼ 제일 처음 들어간 곳은 제1 전시실입니다. 제1전시실은 원폭 피해가 일어나기 전 나가사키의 모습과 원폭 낙하까지의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피폭전의 나가사키의 모습인데 야마자토마치 일대의 전경으로 멀리 우라카미 성당이 보입니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원목 괘종시계는 오전 11시 2분에 멈춰 있는데, 낙하 당시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영원한 11시 2분이라는 시계로 폭심지에서 약 800 미터 떨어져 있는 산노신사 부근의 민가에 파손된 상태로 발견된 것입니다.




▼ 제2전시실은 원폭으로 인한 피해 참상을 보여줍니다. 원폭 피해를 입은 우라카미 성당 벽면을 재현한 모형과 고열, 폭풍, 방사선 등으로 인한 피해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원자폭탄의 폐허로 변한 나가사키 거리를 재현한 곳입니다.




▼ 철제 구조물이 녹아서 휘어져 있습니다. 원폭에 의한 엄청난 열선의 효과입니다.



▼ 원폭이 투하된 직후의 나가사키이 현장...폭심지에서 8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구제 케이호중학교의 다다리가 휘어진 이 급수탱크, 우라카미 성당의 일부 (재현), 오하시 다리의 일부




 ▼ 나가사키는 주변이 산이라서 원폭의 피해가 히로시마와는 달리 나가사키에만 한정되었다고 합니다.

붉은색 표시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 지역입니다.




 ▼ 전시장 내부는 어둡고 대신 전시물은 선명하게 조명을..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 주말이라서 그런지 일본 현지인들도 많이 견학을 하고 있습니다.



▼ 원폭 후 폐허가된 나가사키의 모습과 남은 구조물들...



▼ 나가사키 원폭의 실물크기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플루토늄 폭탄으로  길이 3.25미터, 직경 1.52미터, 무게 4.5톤입니다.

위력은 고성능 폭약 21킬로톤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나왔다고 합니다.



▼ 플루토늄 폭탄의 구조상 뚱뚱한 형태이었기 때문에 팻맨으로 이름이 지어졌고 이를 투하한 B-29 폭격기도 이 거대한 폭탄을 탑재하기 위해 기체 하부의 폭탄창을 개수했다고 합니다. 이 폭탄은 푹탄둘레의 화약으로 플루토늄을 안쪽으로 폭축하여 핵분열을 일으킵니다.




▼ 원폭의 열선에 의해 녹아버린 물건들입니다. 원폭의 에너지는 약 50%가 폭풍으로, 35%는 열선, 15%는 방사선으로 피해를 입힙니다.



▼ 사람의 손뼈와 유리가 녹아서 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원폭의 열선의 효과가 상상이상입니다.

폭팔지점의 온도는 최고 섭씨 3900도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 왼쪽 사진은 폭심지로 부터 4.4 킬로미터 떨어진 요새사령부에서 병사가 옥상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다가 그대로 원폭의 열선을 받은 흔적입니다. 나무벽에 사다리와 병사의 그림자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걸려잇는 빨래의 그림자가 벽에 남아 있는 사진입니다.




▼ 원폭후 뜨거운 열선이 지나가면 엄청난 폭풍이 불어닥칩니다. 폭풍에 의한 피해를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모든 건물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당시 폭풍의 속도는 최고 시속 1000킬로미터가 넘었다고 합니다.  



▼ 원폭 폭풍에 의한 피해로 많은 건물이 무너진 사진입니다. 



▼ 튼튼한 석조건물 일부만 버티고 있습니다. 모든 건물이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 방사선에 의한 피해는 오래갑니다. 피폭자들은 백혈병 뿐만 아니라 방사능 피폭 켈로이드라는 질병을 얻었습니다. 



▼ 나가사키 원폭 투하 후 피해자들에 대한 구조, 구호 활동은 주로 특별 구호병원이 된 신코젠 국민학교에서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그 당시 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원폭 특유의 질병으로 사망자가 속출했다고 합니다.



▼ 천주교 신자인 나가이 다카시는 나가사키의과대학 조교수로 부속의원에서 근무하다가 원폭에 피폭하였습니다. 원래 전문분야인 방사선 치료 연구중 만성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그는 병원에 찾아온 수많은 환자를 돌보았고 사흘만에 집에 돌아왔으나 이미 아내는 불에 타 앙상한 유골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추스르지도 봇하고 나가이는 구호 활동과 지역 재건에 나섰고, 병세가 짙어져 더 이상 거동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환자 치료에 전념하다 1946년에 지병으로 쓰러집니다. 한 평짜리 집 ‘여기당’에서 저술활동에 전념하며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는데 1945년부터 195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배출하였습니다. 1949년 출간된 「나가사키의 종」은 영화화되어 전 일본인의 심금을 울렸고,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가이 박사는 자신의 인세 수익의 대부분을 재건사업 등에 기부하였습니다.



  제3전시실에는 핵무기의 역사와 핵무기 없는 세계에 대한 소망을 담은 전시물이 있습니다.



▼  나가사키 원폭 투하 한달 후의 항공사진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안남았습니다.



▼ 핵무기의 개발사와 발달사에 대해서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 천장에 미국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모형이 걸려 있습니다. 한때 미국은 저 미사일을 핵투발 수단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와 보유 수를 나타내는 원형그림입니다. 북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핵전쟁이 났을 때 지구 곳곳에 피어오르는 핵구름을 나타내는 모형...



▼ 시대별로 각 나라의 핵무기 개발 상황과 미사일 등 핵 투발 수단에 대한 설명이...



▼ 초기에 개발되었던 핵미사일들은 크기가 상당합니다.



▼ 전술핵무기나 발당하면서 미사일의 크기도 작아젔습니다.



▼ 연대별로 내용을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 이제 계단을 따라 입구 로비로 다시 올라갑니다.



▼ 계단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하 이층 전시실의 모습입니다.




▼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에 있는 원폭돔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이 건물은 히로시마 물산 장려관은 5층으로 된 중심 코어가 있는 3층의 벽돌 건물이었습니다. 구리로 덮인 철골의 타원형 돔이 얹어져 있었는데 원폭으로 인해 파괴되고 골조만 남아 지금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의 대표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