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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영국, 아일랜드

영국, 아일랜드 여행 3일 리버풀 더 비틀즈 스토리 (The Beatles Story, Liverpool), 비틀즈의 탄생과 해체

by G-I Kim 2021. 2. 5.

 

 

▣ 더 비틀즈 스토리(The Beatles' Story)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로열 앨버트 독 브리타니아 파빌리언에 위치해 있으며 1990년 5월 1일에 개장하였습니다. 비틀즈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틀즈의 역사와 관련된 장소인 카스바 커피 클럽(Casbah Coffee Club), 매튜 스트리트(Mathew Street), 더 캐번(The Cavern), 아비로드 스튜디오(Abbey Road Studios) 등이 재현되어 있고 조지 해리슨의 첫 기타, 존 레넌의 그랜드 피아노, 비틀즈 멤버들이 직접 입었던 무대의상, 브리티시 인베이젼(British Invasion) 등에 대한 내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더 비틀즈 스토리는 로열 앨버트 독 브리타니아 파빌리언 지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브리타니아 파빌리언 중앙에 있는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입구가 보입니다.

 

 

▼ 입구로 들어서면 방공호 같은 구조가 나오고 매표소가 있습니다. 과거 앨버트 독 창고로 쓰이던 건물의 지하입니다. 1980년대에 다시 수리하여 문화단지로 개장했지만 원래 1840년대에 철근과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티켓 가격은 16세 이상 성인 18 파운드, 노인과 학생 14 파운드, 15세 이하 어린이는 10 파운드입니다. 

 

 

▼  모든 방문객에게 오디오 가이드 기계를 나누어 주는데 한국어가 지원됩니다. 가이드 기계의 헤드폰이 아주 좋습니다.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가이드 내용은 한국 여성의 목소리로 녹음이 되어 있고 충실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 첫 번째 전시물은 비틀스 멤버들의 탄생에 대한 내용입니다. 존 레넌은 1940년 10월 9일생이고 폴 매카트니는 1942년 6월 18일생, 조지 해리슨은 1943년 2월 25일생, 링고 스타는 1940년 7월 7일생입니다. 1965년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는 5등급 대영제국 훈장(MBE)을 받아서 이름 뒤에 'MBE'가 붙고, 1997년 폴 매카트니, 2018년 링고 스타는 기사 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습니다.  

 

▼ 1957년 3월, 쿼리 뱅크 중등학교(Quarry Bank Comprehensive School, 현재는 Calderstones School)를 다니던 16세 존 레넌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스키플 및 로큰롤 음악 그룹을 결성하는데 다니고 있던 학교의 이름을 따서 밴드명을 더 쿼리맨(The Quarrymen)이라고 합니다.  1957년 7월 존 레넌과 만나게 된 15세의 폴 매카트니는 곧 밴드에 리듬 기타로 합류하게 됩니다. 더 쿼리맨은 길거리 공연을 많이 했습니다.

 

 

▼ 리버풀 태생 비틀즈 멤버인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의 졸업사진입니다. 존 레넌은 쿼리 뱅크 중등학교(Quarry Bank Comprehensive School) 졸업생이고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은 문법 학교인 리버풀 연구소 남자 고등학교 (Liverpool institute high school for boys) 졸업생입니다.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의 모교는 1985년 문법 학교를 반대하는 영국 노동당에 의해 폐교되었습니다.

 

▼ 조지 해리슨의 첫 기타와 쿼리맨 공연 사진입니다. 고등학생 음악 밴드의 앳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958년 2월 6일, 폴 매카트니는 같은 학교에 다녔던 조지 해리슨을 리버풀의 윌슨 홀에서 열린 더 쿼리맨의 공연에 초대했습니다. 당시 14세였던 조지 해리슨은 몇 달 동안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해서 더 쿼리맨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가입했습니다.

 

 

▼ 카스바 커피 클럽 (Casbah Coffee Club)은 비틀즈의 첫 드러머 피터 베스트(Pete Best)의 어머니 모나 베스트 (Mona Best)의 자택 지하실에 만들어진 클럽으로 1959년 8월 29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 클럽에서 쿼리맨이 첫 공연을 할 예정이었는데 클럽 실내가 준비되지 않자 쿼리맨의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켄 브라운은 클럽의 도색을 도왔다고 합니다. 네 사람 모두 붓을 들고 거미, 용, 별등을 벽에 그렸습니다.

 

 

▼ 1960년 8월에 밴드 이름을 비틀즈로 바꾸고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스튜어트 섯클리프(Stuart Sutcliffe), 피터 베스트 5인조로 독일 함부르크에서 연주를 했으며 중간에 스튜어트 섯클리프가 그만두어 4인조가 되었습니다.

 

 

▼ 머지 비트(Mersey Beat)는 존 레넌이 다니던 리버풀 예술대학의 반 친구 빌 해리가 창간하고 1960년대 초 영국 리버풀에서 격주로 발행된 음악지입니다.  리버풀의 신생 밴드와 도시에 찾아오는 스타들의 공연을 소개했는데 비틀즈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독점 소식과 사진을 여러 번 게재했습니다. 존 레넌은 여기에 자신의 초기 글을 많이 기고했으며 가끔씩 웃기는 광고를 실은 일도 있었습니다. 머지 비트의 기사의 도움으로 비틀즈는 리버풀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 프랭크 헤시(Frank Hessy)는 1923년부터 리버풀에서 악기를 판매한 상점으로 비틀즈 멤버들이 첫 기타를 구입한 곳입니다. 존 레넌의 어머니는 여기서 존 레넌의 첫 기타인  Gallotone Champion를 구입하였으며 폴 매카트니는 아버지가 물려준 프럼펫을 독일 기타인 Zenith Model 17로 바꾸었습니다. 조지 해리슨은 두 번째 기타인 Hofner President를 구입했습니다. 이외에 리버풀의 많은 뮤지션들이 이 가게에서 악기를 구입했습니다.

 

 

▼ 비틀즈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리버풀의 매튜 스트리트(Mathew Street)를 재현했습니다. 매튜 스트리트에는  로큰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유명한 라이브 클럽으로 꼽히는 더 캐번(The Cavern)이라는 클럽이 있었습니다. 더 비틀즈 스토리에서는 더 캐번 앞에는 더 그레이프스(The Grapes)가 있는데 아직도 운영 중인 더 그레이프스는 실제로는 바로 앞이 아니라 더 캐번과 좀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더 캐번은 주류를 판매하지 않아 공연장을 찾은 비틀즈를 비롯한 많은 아티스트는 공연 전후에 인근 ‘더 그레이프스(The Grapes)’나 ‘화이트 스타 (White Star)’ 등에 들러 술을 마시곤 했습니다. 매튜 스트리트의 더 그레이프스는 비틀스의 첫 드러머였던 피터 베스트(Pete Best)가 1962년 8월  밴드에서 해고된 날 눈물의 술잔을 비운 장소였다고 합니다. 

 

 

▼ 비틀즈는 리버풀의 더 캐번(The Cavern)이라는 클럽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로큰롤 연주를 보여주는 공연을 했고, 이곳에서 매니저이며  제5의 비틀즈라고 하는 브라이언 앱스타인(Brian Epstein)을 만나게 됩니다. 

 

 

▼ 더 캐번(The Cavern)은 1957년 1월 16일 재즈클럽으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방공호로 사용되었던 터널과 아치형의 지하실이었습니다. 1960년대 들어 캐번에서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로큰롤 연주를 보여주는 공연이 인기였습니다. 비틀즈는 1961년 2월 9일 목요일 점심시간에 5파운드를 받고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비틀즈는 점심시간 공연 151회를 비롯하여  1963년 8월 3일까지 더 캐빈에서 292차례 공연을 했는데 이때 비틀스의 매니저로 활동하게 되는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pstein)과의 역사적인 만남을 갖습니다. 

 

 

▼ 더 캐번에서는 술을 팔지 않았습니다. 스낵바에서 커피, 햄버거, 샌드위치를 팔았습니다. 건전한 (?) 음악 클럽이었습니다. 

 

 

▼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가족들이 설립한 리버풀 최대의 음반 매장인 NEMS (North End Music Stored)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리버풀의 젊은이들의 관심이 비틀즈에 몰리는 걸 알고 있었고 더 캐번에서 비틀즈와 만나 비틀즈의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리버풀의 인기 음악 잡지 머지 비트를 운영하는 존 레넌의 친구 빌 해리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비틀즈의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음반 매장인 NEMS의 내부 일부가 옛날 사진과 함께 재현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엡스타인 일가족이 운영하는 가구 매장이었다고 합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대형 음반 매장을 경영한다는 위치를 이용해서 1962년 1월 1일 데카 레코드에서 오디션을 볼 기회를 주선했지만 데카 측에서는 비틀즈 같은 록 밴드들은 곧 유행이 다해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여 결국 계약을 맺지 않았습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EMI 산하 팔로폰 레코드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에게 비틀즈를 소개하고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실력을 보고 난 뒤 정식으로 음반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후 비틀즈는 조지 마틴의 요구대로 드러머 피트 베스트를 링고 스타로 교체합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입고 다녔다는 옷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비틀즈의 매니저로 비틀즈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다섯 번째 비틀즈'로 자주 불리고 있습니다.  독일계 유대인인 그는 NEMS 엔터 프라이시스'라는 매니지먼트 회사를 만들어  셜리 블랙, 비지스, 지미 헨드릭스와 계약을 하기도 했습니다. 비틀즈의 미국 진출도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 애비 로드 스튜디오(Abbey Road Studio)는 영국 런던의 웨스터민스터에 위치한 음악 스튜디오로  EMI 레코드 소유에 있습니다. 1931년 11월에 설립되었는데 비틀즈, 클리프 리처드, 핑크 플로이드 등의 유명 가수들이 이곳에서 녹음을 했습니다. 아비 로드 스튜디오 벽에 남겨진 비틀즈 팬들의 낙서가 재현되어 있습니다.   

 

 

▼ 비틀즈가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할 당시의 악기들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비틀즈는 애비 로드 스튜디오의 제2스튜디오와 제3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다고 합니다.

 

 

▼ 비틀즈의 '예스터데이(Yesterday)' 악보입니다.  폴 매카트니 혼자 작업한 곡으로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된 음악입니다. 총 2,200개가 넘는 리메이크 곳이 있으며 1965년 9월 13일 미국에서 처음 발매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1965년 6월 14일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비틀즈의 또 다른 노래 I’m Down을 녹음한 직후 녹음되었습니다. 

 

 

▼ 비틀 마니아(Beatlemania)는 비틀즈의 팬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특히 1960년대에 존재했던 열광적인 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963년 10월 13일 비틀즈는 런던 팔라듐 극장에서 공연했는데 광적인 팬들의 열광적인 모습을 보고 영국 데일리 미러지는 전례 없던 그 대혼란을 묘사하려고 비틀 마니아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비틀 마니아가 유행하면서 영국 순회공연에서는 매일 밤 정신을 잃은 관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듬해 그 뜨거운 열기는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국의 비틀즈 열성팬은 영국보다 훨씬 더 과격했는데 비틀즈와 똑같은 옷을 입고 머리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공연장에 몰려들어서는 담장을 무너뜨리기도 했습니다.  

 

 

▼ 이 당시 비틀 마니아 들은 비틀즈 음반뿐만 아니라 굿즈도 많이 구입했습니다. 굿즈에는 인형, 접시, 방석, 병따개 등이 있었습니다. 비틀즈 멤버 얼굴이 새겨진 스타킹도 팔았습니다.

 

 

▼ 4살로 비틀즈 팬 클럽의 최연소 회원이 되었던 러셀 제이미슨(Russell Jamieson)의 오리지널 비틀즈 가죽 자켓과 가입 독려 편지, 4살 때 비틀즈와 같이 찍은 사진 등이 2017년부터 전시되고 있습니다.

 

 

▼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의 대표 주자인 비틀즈는 1964년 2월 7일 미국에 진출했습니다. 미국 팬암 항공의 보잉 707-331 기종을 타고 미국으로 가는 동안 영국 히스로 공항에는 4,000명,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에는 3,000명의 관중들의 환송과 환영을 받았습니다.  2월 9일 비틀즈는 에드 설리번 쇼에서 처음 미국 라이브 공연을 했고 미국 인구의 34%에 가까운 2,300만 가구에서 약 7,300만 명 이상의 시청자가 시청했다고 합니다. 당시 비틀즈가 타고 갔던 미국 팬암 항공 비행기의 내부가 재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합니다. 

 

 

▼ 1967년 6월 1일 발매한 비틀즈의 8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트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입니다.  당시 유행하던 히피 문화와 사이키델릭 록 음악을 반영했습니다. 1967년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고, 1997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3천2백만 장의 판매고를 넘어섰습니다. 카를 마르크스, 에드거 앨런 포, 카를 융, 윈스턴 처칠,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딘, 마릴린 먼로 등 유명인들의 실물 크기 카드보드를 만들어 꽃밭 앞에서 찍은 사진을 사용한 앨범 커버도 유명합니다. 앨범 사진 촬영 당시 입었던 옷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앨범의 발표 직후인 1967년 8월 27일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테인이 약물 과다로 사망하게 됩니다.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Magical Mystery Tour)는 비틀즈 멤버들이 1967년 11월 27일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직접 제작한 TV 영화 이름이며, 그 영화의 사실상 사운드 트랙이라 할 수 있는 앨범입니다. 정규 앨범이 아니지만 현재 정규앨범처럼 취급받고 있고 있습니다.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트 클럽 밴드에 수록될 예정이었다가 수록 안 하고 싱글로만 발매 한 곡들과 미발표곡들을 모아놓은 앨범이기도 합니다. 미스터리 투어(Mystery Tour)는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을 아무 사람이나 섞어서 떠나던 여행입니다.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Strawberry Fields Forever)는 존 레넌이 한때 살았던 미미 이모네 집 인근의 고아원 '스트로베리 필즈'를 배경으로 쓴 곡으로 몽환적인 멜로디와 향수 가득한 가사, 당대 최첨단 녹음기술들을 동원한 편곡으로 비틀즈 최고의 명곡 중 하나입니다.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앨범에 수록되었습니다. 

 

 

▼ 옐로 서브마린(Yellow Submarine)은 요약 비틀스의 주옥같은 팝송들이 가득한 1968년에 발표한 애니메이션입니다.  비틀스 멤버들이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등장하여 음악을 혐오하는 블루 미니들로 인해 위기에 빠진 페퍼 랜드를 구하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는 내용입니다. 2년여의 제작기간을 거쳐 총 25만 파운드의 제작비가 소요되었으며, 개봉 후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66년 8월 5일 발매된 비틀즈의 7집 리볼버(Revolver)에 수록된 곡인 옐로 서브마린이라는 곡은 현재 영국에서는 동요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잠수함 내부가 재현되어 있습니다.

 

 

▼ 루프톱 콘서트(The Beatles' rooftop concert)는 1969년 1월 30일 멀티미디어 기업 애플 코어의 런던 사옥 건물 옥상에서의 비틀즈 즉석 공연입니다. 42분가량의 공연을 하려고 했지만 경찰청이 볼륨을 줄여달라고 요청하여 아홉 곡 중 다섯 곡만 제대로 들릴 수 있었습니다.

 

 

▼ 공연의 촬영 영상은 1970년 다큐멘터리 렛 잇 비(Let it Be)에 쓰입니다. 비틀즈의 루프톱 콘서트는 이들의 팬에게 한 시대의 종말로 평가되고 있으며 비틀즈는 애비 로드(Abbey Road)를 제작한 후 1970년에 비공식적으로 해체됩니다. 

 

 

1969년 9월 26일에 발매된 애비 로드(Abbey Road)는 비틀즈의 11번째 스튜디오 음반으로 마지막 앨범입니다. 이 앨범을 녹음할 시기에는 비틀즈 멤버들 간에 불화가 절정에 치달았습니다. 유명한 이 앨범 커버 사진은 1969년 8월 8일 이안 맥밀런이 맡았는데 오전 10시,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음악 역사상 최고로 유명하고 최고로 많이 패러디 된 작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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