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럽여행/영국, 아일랜드

영국, 아일랜드 여행 9일, 영국, 아일랜드 여행 9일,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The British Museum)-6 고대 이집트(Ancient Egypt)

by G-I Kim 2021. 10. 18.

▣ 우리나라에서 대영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은 영국 런던에 1759년 설립된,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 박물관입니다. 인류의 태동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세계 각 문명권의 역사 문화를 망라하는 800만 점 이상의 유물과 민속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아래층에는 석상 등 커다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적들이 있으며 위층에는 미라, 관 등의 유적들이 있습니다.   

 

◈ 고대 이집트인의 삶과 죽음(Egyptian life and death, The Michael Cohen Gallery, Room 61)

 

Egyptian life and death (The Michael Cohen Gallery, Room 61), British Museum, London, October 2019

△ 박물관 위층에서 제일 먼저 보게 된 유물은 고대 이집트의 무덤인 네바문의 무덤 예배당(Tomb chapel of Nebamun)이었습니다. 네바문의 무덤은 기원전 약 1350년, 고대 이집트 18 왕조 당시의 무덤으로 테베(현재의 이집트 룩소르)의 나일강 서안에 위치한 테베 네크로폴리스(Theban Necropolis)에 있었습니다. 이 무덤은 부유한 이집트 관리의 것으로 무덤 안 예배당에 그려진 벽화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일상생활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 네바문의 무덤 예배당의 비석입니다. 상형문자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비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서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무덤 주인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네바문의 무덤 예배당은 네바문과 그의 아내 사후 사람들이 헌금을 하면서 추도하던 곳이었습니다. 네바문은 무덤은 예배당 가장 안쪽의 숨겨진 공간에 안치되었습니다. 

 

△ 네바문의 무덤 예배당에 있던 벽화의 파편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무덤에 예배당을 짓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었고 왕족이나 귀족 등 재력가들만 할 수 있었습니다. 네바문의 무덤은 사막 언덕에 만들어졌는데 인부들은 돌과 구리로 만든 도구로 무덤을 조성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덤 예배당의 벽과 천장은 진흙 회반죽과 흰색 회반죽으로 덮고 나서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예술가들은 최종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전에 스케치를 했는데 현재도 스케치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림은 검정, 흰색, 빨강, 노랑, 파랑 및 녹색 물감을 이용하여 그렸습니다. 

 

▣ 네바문의 무덤 예배당 벽화의 파편은 일과 놀이를 동시에 즐기는 네바문과 그의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덤 예배당에서 거행된 장례 의식, 엘리트 관리로서의 삶, 가족이 참여한 습지에서의 사냥 등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네바문은 내세에서도 영원히 엘리트 생활을 지속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아래는 네바문의 무덤 예배당 벽화의 일부입니다.  직접 찍은 사진이 너무 흐려서 다른 사이트에서 가지고 온 벽화 사진입니다. 이집트의 왕실의 무덤에 가보면 이보다 더 선명한 벽화들을 볼 수 있는데 네바문의 무덤 예배당 벽화처럼 왕족이 아닌 일반인의 생활을 묘사한 그림은 드문 것 같습니다.

 

△  (←) 습지에서의 사냥(Hunting in the Marshes), 나일강 습지에서 네바문과 그의 아내 하트셉수트, 어린 딸과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새를 사냥하는 모습입니다. (→) 네바문의 정원(Nebamun's Garden),  내세에 있는 네바문의 정원은 부유한 이집트인의 지상 정원과 다르지 않습니다. 풀에는 새와 물고기로 가득 차 있으며 꽃 테두리와 나무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나무에는 무화과, 대추야자 및 돔 야자나무가 포함됩니다. 

 

(↖) 네바문의 소(Nebamun's cattle), 네바문이 소 떼를 검사하는 모습입니다. 상형 문자는 그림의 장면을 설명하고 있는데 농부들이 대기열에서 말다툼을 할 때 말하는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소의 색상과 패턴이 번갈아 가며 그려져 있어 동물의 움직임이 절묘하게 느껴집니다.  (↗) 네바문의 거위(Nebamun's geese), 네바문이 거위 떼를 검사하는 모습입니다. 그는 농부들이 거위들을 자신에게로 몰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고 그의 비서는 기록을 위해 동물의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제물을 가지고 오는 하인(Servants bringing offerings), 간소한 옷을 입은 하인들의 행렬은 사막에서 가져온 곡식과 동물 등의 음식을 네바문에게 가져오고 있습니다. 하인들이 잡고 있는 동물은 사막 토끼입니다. (↘) 들판 조사(Surveying the fields for Nebamun), 네나문의 측량 모습을 표현한 벽화입니다. 네바문은 카르낙에 있는 아문 신전에서 곡식을 담당하는 관리였습니다. 벽화에서 관리들이 현장을 시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의자와 보관함 등 무덤에 있던 가구와 도자기, 토기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정교한 가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의자, 테이블, 소파, 의자 및 침대를 사용했습니다. 평민들이 소유했던 가구와 왕족이나 귀족들이 소유했던 가구들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가구가 보존되어 오늘날 볼 수 있는 것은 주로 왕족이나 귀족 등 재력가들의 장례의식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이집트인들은 가구가 많지 않았고 가죽이나 양모로 덮인 다리가 3개 또는 4개인 낮은 의자가 가장 흔했습니다. 대조적으로, 고대 이집트의 귀족과 왕족은 훨씬 더 많은 가구를 가지고 있었고 정교한 조각이 있는 가구들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의자의 경우 개인의 지위가 높을수록 더 크고 화려한 의자를 사용했습니다. 대부분의 하층민들은 얼마 안 되는 소지품을 담을 수 있는 상자와 바구니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무가 비싸서 상자는 종종 갈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에 비해 재력가의 보관함은 나무나 상아로 만들어졌으며 화려했습니다.  

 

◈ 고대 이집트인의 죽음과 내세 (Egyptian Death and Afterlife: mummies, The Roxie Walker Galleries, Rooms 62–63)

 

△ Roxie Walker Gallery에서는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전시장에는 미라와 관, 그리고  고인과 함께 묻히기 위해 고안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62번 방에는 서기 125년부터 기원전 700년까지의 유물을, 그리고 63번 방에는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전 2000년까지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 고대 이집트인들은 개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신앙의 대상으로서 모셔지던 매, 따오기, 악어, 하마, 소도 미라로 만들었습니다. 애완용으로도 키워지던 고양이 미라는 한 번에 수십 톤씩 발굴되기도 했는데 영국으로 이송하여 모두 갈아서 비료로 사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2011년에는 이집트 북부에서 한 번에 800만 마리의 개 미라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Painted wooden coffin from Akhmim, Egypt, early Roman Period, late 1st century BC to early 1st century AD, British Museum, London, October 2019

△ 나일강 서안의 도시 아흐님(Akhmim)에서 발굴된 초기 로마시대의 관입니다. 기원전 1세기 후반에서 서기 1세기 초반의 무덤에서 나온 색이 칠해진 목재관(Painted wooden coffin from Akhmim)입니다. 아흐님은 고대 이집트명 켐미스(Chemmis), 그리스명 파노폴리스(Panopolis)로 불리던 도시로 현재는 소하그시 나일강 동안에 있습니다. 미라가 들어가는 관이지만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관보다 사람의 모습을 더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관의 표면에는 상형문자가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집트의 미라 풍습은 로마 점령 시대 이후까지 이어졌는데 매장 방식은 약간 달랐으나 미라 제작은 이집트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고 합니다. 이후 이집트 전통 신앙의 쇠퇴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박해로 이집트에서의 미라 제작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 고대 이집트에서 미라를 제작한 이유는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독특한 사후관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사후세계로 갔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몸으로 돌아와 되살아나고 육신이 온전해야 완전히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시체 보존에 대한 경험과 약학 지식 등을 동원하여 시신을 방부 처리를 했습니다. 미라 제작을 제작할 때에는 심장을 제외한 모든 내장을 빼내고 시신 안에 다른 물질을 채웠는데, 사회 상류층은 송진과 향료를 섞어 넣었고, 하층민의 경우 톱밥이나 돌덩이를 넣었습니다. 이후 탄산나트륨인 천연소금으로 몸을 건조하고 붕대 감은 후 관에 넣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생각을 뇌가 아니라 심장으로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심장은 꺼내고 난 뒤에 붕대로 감아서 다시 넣었다고 합니다. 

 

The coffin of Hor, British Museum, London, October 2019

△ 호르의 관은 이집트 테베에서 발견된 고대 이집트 제25 왕조인 기원전 700~680년 경에 만들어진 유물입니다. 호르는 강력한 테베 가문의 일원으로 몬투신의 사제이기도 했습니다. 호르의 관은 내부의 관과 외부의 관이 모두 전시되고 있습니다. 그의 관은 1820년대 초반에 Deir El Bersha라는 나일강변의 마을의 하트셉수트(Hatshepsut) 사원 근처의 무덤에서 발굴되었습니다.

 

△ 파센호르의 목제관(Wooden coffin of Pasenhor)은 고대 이집트 제3 중간기 후기(기원전 1070-661년)에 만든 인간 모양의 관입니다. 이 관의 외부의 그림이나 성형 문자는 파란색, 녹색, 검은색, 빨간색, 흰색 등 제한된 색상으로 그려졌습니다. 관의 전면에는 <죽음의 서> 125절에서 발췌한 문구 등 대부분 주문으로 덮여 있습니다.

 

Mummy of Katebet, British Museum, London, October 2019

△ 카테벳의 미라(Mummy of Katebet)는 아문신의 가수(Chantress of Amun)이었던 노인의 미라입니다. 그녀는 사원의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배에는 작고 검은 딱정벌레가 있는데 이것은 그녀가 신들의 심판을 받았을 때 마법처럼 그녀를 보호해 줍니다. 영국 박물관 과학자들은 손상을 시키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알아내기 위해 CT 스캐너를 사용했습니다.  그녀는 사망했을 때 단지 두 개의 치아만 남았으며 다른 미라와는 달리 뇌는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관은 남자를 위해 제작되었다나 그녀를 위해 변형되었고 남편과 함께 매장되었으나 남편의 관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The Coffins of Gua, British Museum, London, October 2019

△ 이집트 중왕국 시대 12 왕조 (기원전 1985년~1795년)에 수석의사였던 구아의 관(The Coffins of Gua)입니다. Deir El Bersha라는 나일강변의 마을에서 발견된 중왕국 시대의 무덤에서 발굴되었습니다. 구아의 관은 드제후티호텝(Djehutihotep) 무덤 예배당 앞의 5개의 보조 갱도 무덤 중에 하나에서 발견되었는데 구아는 드제후티호텝의 주치의였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바깥쪽 관과 안쪽 관 모두 외관은 주로 상형문자가 그려져 있으며  미라가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도록 호루스의 눈이 그려져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사후세계에 도달하는 것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지하세계의 지도와 음식과 가구, 옷, 도구, 무기, 보석류 등 제물 목록을 포함한 사후세계에 필요한 물건들의 표현되어 있습니다. 

 

Coffin of Sobekhotep I, British Museum, London, October 2019

△ 기원전 1781~1650년까지 이집트를 다스린 파라오 소벡호텝 1세(Sobekhotep I)의 관(Coffin) 입이다. 소벡호텝 1세는 이집트 제13 왕조의 첫 번째 파라오로 알려져 있습니다. 외부의 관과 내부의 관이 모두 전시되어 있는데 현지에서 구할 수 있었던 나무의 일종인 개무화과 나무(Sycomore Fig)로 만들어졌습니다. 소벡호텝 1세 무덤의 위치는 발견되지 않다가 2013년 아비도스에서 발견되었다고 알려졌지만 그 무덤은 현재 소벡호텝 4세의 무덤의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외부의 관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이집트에서는 노란색은 태양과 관련이 있고 금을 대체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외부 장식에는 특징적으로  빨강, 청록, 흰색 테두리와 <호루스의 눈>인데 이는 고인이 관 안에 누워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비문은 흰색 바탕에 상형문자로 자주 선택되는 옅은 파란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관 옆에는 인형 등으로 만들어진 부장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기원전 305년~303년) 시대의 알려지지 않은 청년의 미라입니다. 1820년대에 발견되었는데 나이는 21세로 추정되고 있고 매우 특이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미라입니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이집트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에 의해 정복되었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하자 휘하 장수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이집트에 자리를 잡고 만들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왕은 유명한 클레오파트라 7세입니다.  

 

△ 고대 이집트 25 왕조, 기원전 70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목제 카노푸스 단지(Canopic Jar)입니다. 이 항아리에는 미라를 만드는 과정에서 제거된 장기가 보관되었습니다. 각 항아리는 호루스의 4명의 아들을 상징하는데 매의 머리인 케베세누프 신(Qebhsenuef)의 항아리에는 창자를 넣고 재칼 머리의 두아무테프 신(Duamutef)의 항아리에는 위를 넣었습니다. 원숭이의 머리 모양을 갖고 있는 하피 신(Hapy)의 항아리에는 폐를 넣고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한 임세트(Imsety) 신의 항아리에는 간을 넣었다고 합니다. 이런 항아리는 제18 왕조 말 (기원전 약 1550년-1295년) 이후부터 사용되었는데, 제21왕조 (기원전 1069년-945년)부터는 매장문화의 변화가 발생하여 장기들이 다시 미라 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항아리들은 매장의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졌기 때문에 여전히 무덤에 포함되었습니다. 

 

◈ 초기 이집트 (Early Egypt, The Raymond and Beverly Sackler Gallery, Room 64)

 

The Raymond and Beverly Sackler Gallery, British Museum, London, October, 2019

△ The Raymond and Beverly Sackler Gallery (Room 64)에는 고대 이집트 선왕조 시기(기원전 6000년~기원전 3150년)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선왕조 시기는 고대 이입트 신석기시대에서 고대 이집트에 왕정이 시작되기까지의 시기를 말하는데 상하 이집트를 막론하고 다양한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빙하기를 지나고 선사시대에 이르면서 급격히 기온이 오르자 사막이었던 사하라 일대는 기원전 10000년 경 풀과 키 작은 관목으로 뒤덮이기 시작했고, 인간이 살기에 적합한 기후가 되면서 북아프리카의 생활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구 자전축의 변화와 기원전 6000년~기원전 5000년에 있었던 급격한 기온 하강으로 다시 사막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미 기원전 4400년경부터 나일 계곡에서는 초기 문명의 유물들이 발견되는데 대규모 군사적 원정을 암시하는 정복자의 기념물, 귀족의 화장용 팔레트, 무기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이집트 통일 직전에는 크게 상, 하 이집트의 두 왕국이 존재했으며 왕국 안에는 30여 개의 도시국가들이 저마다 성벽을 쌓고 자치적으로 운영했습니다. 

 

Gebelein predynastic mummy, The Raymond and Beverly Sackler Gallery, British Museum, London, October, 2019

△ 박물관의 다른 미라와는 달리 자연스럽게 보존된 미라 한구가 보입니다. 기원전 3400년 경의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 게벨레인 선왕조 미라들(Gebelein Predynastic Mummies) 중에 한구입니다. 게벨레인 선왕조 미라는 고대 이집트 선왕조 시기(기원전 6000년~기원전 3150년)의 자연적으로 미라화 된 6구의 시신으로 처음으로 발견된 선왕조 시대의 완전한 미라입니다. 이 미라들은 19세기 말 영국 이집트학 박물관 관리인 왈리스 버지에 의해 이집트 사막의 게벨라인 근처의 얕은 모래 무덤에서 옆으로 눈은 자세로 발굴되었습니다. 이 중 최초로 발굴된 미라가 1901년 이후로 영국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데 빨간 머리 때문에 진저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 2012년 11월 이 미라를 런던 크롬웰 병원에서 CT 스캔을 했는데 사망 당시 18세에서 20세 정도였으며 근육질의 상태였습니다. 미라의 왼쪽 어깨뼈 아래에서 몸에 구멍이 난 것을 밝혀졌고 구멍을 낸 무기는 어깨뼈를 약간 손상시킬 정도의 힘으로 사용되었지만 그 아래에 있는 갈비뼈를 산산조각 내고 폐를 관통했습니다. 적어도 길이 12cm, 폭 2cm의 구리 칼에 의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미라의 방어흔이 없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공격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게벨레인(Gebelein) 지역의 유적지에서 보이는 나일강 모습입니다. 게벨레인은 나일강가의 마을로 현재의 룩소르 지역인 테베에서 남쪽 40킬로미터에 있는 마을입니다. 현재는 Naga el-Gherira라는 지역입니다. 유적으로는 기원전 3,400년 경의 게벨레인 미라가 있었던 무덤을 비롯하여 제2 왕조와 제3 왕조 시기에 만들어진 히토르 신전, 프톨레마이오스 시대 군사 진영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집트 여행 당시 나일강 크루즈를 카고 에스나를 거쳐 룩소르로 이동할 때 지나간 지역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전형적인 나일강변의 작은 마을이라 사진 촬영도 안 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이 마을은 대부분 농경지인데 서쪽에 유적지들이 있습니다.

 

△ 이집트 선왕조 시대의 토기입니다. 이집트의 토기는 일반적으로 조잡한 제품이고 질이 좋은 것은 상이집트에서만 발굴되었습니다. 선왕조 시대에는 흑정토기,  채문토기, 적·흑색 마연 토기가 많았는데 왕조시대에는 기술이 침체하고 문양은 단순 또는 소멸하여 실용화되어 파이안스에 그 주역이 넘어갔습니다. 토기 옆에는 화장할 때 사용하던 팔레트가 있습니다.

 

△ 전장 팔레트(Battlefield Palette)는 나카다 3세 (기원전 3300년경~3100년경) 시대의 것으로 화장품을 준비하는 데 사용되던 물건입니다. 기원전 3300년 전까지 이집트의 지역 통치자들은 그들의 권력과 영토를 늘리기 위해 경쟁을 하였는데, 그들은 신들의 축복을 얻기 위 장식된 의식용 팔레트를 신전에 기증하여 신상에 사용되는 화장품을 준비하는데 이용했습니다. 이 팔레트의 앞면에는 소름 끼치는 전투의 여파를 묘사하고 있는데  독수리와 소는 쓰러진 사람을 잡아먹고 있으며 큰 사자는 다른 사람을 잡아먹고 있습니다. 사자는 적들을 물리친 초기 통치자의 상징으로, 이 시기에  초기 왕들은 그들의 힘을 상징하기 위해 다양한 야생 동물의 형태를 취했습니다. 후면에는 두 기린이 차분하게 대추야자를 갉아먹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