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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여행/미국, 캐나다 동부

2012년 5월의 미국, 캐나다 동부여행 (23) 여섯째날, 프랑스의 전통이 살아 있는 곳..퀘벡시티(Ouebec City) 성곽 그리고 신도시

by G-I Kim 2013. 11. 26.

<성곽도시 퀘벡>

 

올드퀘벡은 현재에도 그 외형이 남아 있는 성곽도시입니다. 다수의 요새, 성문, 방어 시설 등이 잘 보존되어 있는 북미에서 유일한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영국과 미국이 이곳에서 대처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성곽도시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이후 개발의 논리에 의해 훼손될 뻔 했으나  1875년~1880년에 뒤프랭 경(Lord Dufferin)이 펼친 활동으로 보전될 수 있었고 현재는
캐나다 정부의 재정적인 도움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 곳은 세임트 로렌스강변 캅디아망(Cap aux Diamant, Cape Diamond) 이라는 절벽위의 평지에 만들어졌는데 1608년사뮈엘 드 샹플랭이 아메리카의 프랑스, 즉 뉴프랑스의 수도로 이곳을 선택했습니다. 

 

 

아브라함 평원 전투로 대변되는 퀘벡전투에서 퀘벡을 프랑스로 부터 빼앗은 영국은 미국과의 전쟁 때 빼앗기지 않기 위해 1765년부터 성벽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 성벽은 1957년 부터 퀘벡 역사지구로 지정되어 관리되기 시작했습니다.

 

 

퀘벡 시는 허물어진 성곽을 최대한 복원시키고, 일부 구간은 허물어진 터를 보존하여 성곽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올드퀘벡 어퍼타운에서 보이는 서쪽 성벽의 모습입니다.

 

 

아래 사진은 올드퀘벡 로어타운에서 보이는 동쪽 성벽의 모습입니다. 주변 건물과 완벽하게 어울리고 있습니다.

 

 

생 장 (Saint. Jean) 거리나 생 루이(Saint. Louis) 거리와 성벽이 만나는 곳에 성문이 있습니다. 이 성문 옆의 돌계단을 따라가면 성벽으로 올라설 수 있는데, 성벽을 따라 도시 전체를 한 바퀴 둘러볼 수 있습니다.

 

 

저 문은 생 루이(Saint. Louis) 성문인데 서 문으로 들어가서 만나게 되는 생 루이 거리에는 18세기와 19세기에 만들어진 석조건축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전체 길이 4.6km인 이 성벽은 해변 벼랑을 따라가며 여행자들에게 전망 좋은 산책로로 애용되고 있고 도시를 로어타운, 어퍼타운, 신시가지, 구시가지로 구분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성벽 동북쪽 산책로에는 여러 대포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바퀴와 경사로다 달린 받침대가 설치되어 있는 포가 위에 대포가 있어서 좌우로 움직일 수도 있고 발사 후 뒤로 밀리는 대포를 빨리 앞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상하각도 조절도 가능해서 전장식 대포 중에서는 가장 발전된 대포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저 캐논 대포들을 한꺼번에 발사하면 세인트 로렌스 강위의 선박이나 강 건너편에는 무시무시한 악몽이 될 듯합니다.

 

 

대포마다 문양이 있는데.. 어느나라 문양인지???

 

 

짧고 뚱뚱한 형태의 대포들도 있습니다. 이 대포들은 고정식 대포입니다.

 

 

상하로만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는 캐논포도다 작은 대포인데.. 아마도 박격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런데 포구를 나무로 메꾸어 놓았습니다..

 

 

이 대포들은 아마도 멀리 쏘기 보다는 성곽 주변으로 상륙한 적군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는 대포인 것 같습니다.

 

 

동쪽 산책로인...에도 캐논 대포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이 대포들은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대포입니다..

 

 

Terrase Dufferin 남쪽 끝에는 퀘벡 시타델(Citadelle of Quebec)이 있습니다. 시타델로 올라가는 오솔길에 안내판이 하나 서있는다 아브라함 평원에 온것을 환영한다고 써 있습니다. 아브라함 평원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그리고 여기서 좀 더 올라가면 퀘벡 시타델이 나오는데 아직 캐나다군이 군사기지로 사용한다고 하고 시간이 없어서 올라가지 않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캐나다 국기가 휘날리는 언덕 위의 요새가 바로 퀘벡 시타델(Citadelle of Quebec)입니다. 1750년 프랑스 군에 의해 처음 세워진 시타델은 별 모형의 군사 요새로 1831년 영국군에 의해 완공되었습니다.

 

 

시타델은 미국군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요새였지만 실제로 한번도 미국의 공격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곳은 현재까지 군사 시설로 사용되고 있고, 현재는 캐나다 제22연대의 주둔지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시타델 내부에는 중세부터 현대까지 이르는 모든 무기들이 전시된 군사 박물관이 있습니다. 퀘벡전투에 대한 설명과 디오라마가 전시되어 있고 과거에 사요오디었던 대포들과 1차 세게대전 및 2차 세계대전에서 캐나다군이 사용했던 장비들이 여기저기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시타델 입구에는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는데 6월말에서 9월까지 오전 10시까지 근위병 교대식을 볼 수도 있습니다. 

 

 

퀘벡 시타델 아래 언덕에서 바라보이는 세인트 로렌스강의 모습입니다. 요세의 위치가 아주 좋은 것 같습니다. 결국 만들어 놓고 제대로 서보지도 못했지만...

 

 

<퀘백과 전쟁이야기>

 

 퀘벡은 뉴프랑스의 수도로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세인트 로렌스 강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프랑스간의 무수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합니다. 1690년 프랑스의 프론트낙 공작은 필립스 제독이 이끄는 영국군을 물리쳐 퀘백시를 프랑스령으로 만들었으나 1759년 '아브라함 평원 전투'에서 제임스 울프(James Wolfe)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에게 대해하여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고 프랑스는 영토는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1774년 파리강화조약 체결이후 퀘백에 살고 있는 프랑스계 주민들은 프랑스어와  문화, 종교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 현재까지프랑스 문화의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1775년 미국의 리차드 몽고메리 장군과 아놀드 베네딕트 대령이 퀘벡으로의 침입 실패 이후에 이 지역에서 더이상 전쟁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영국군은 방심하지 않고 올드 퀘벡 주변에 방어벽을 만들었다. 그래서 퀘벡은 북미에서 유일한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되었고 이것이 퀘백시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캐나다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전쟁은 처음에 프랑스의 우세이었습니다. 아메리카 식민지 인구가 영국의 1/10도 안되는 프랑스는 본토에서  정예병력을 보앴으며 이에 비해 영국은 식민지에서 모병한 군대를 동원하였습니다. 게다가 영국보다 프랑스가 영토 욕심이 많지 않고 타문화에 대한 수용력이 높아 대부분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프랑스편을 들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1756년에 오스트리아 계승 전쟁의 명장인 몽칼름(Louis-Joseph de Montcalm-Grozon, 1712~1759)을 원군과 함께 북미의 프랑스 식민지인 뉴프랑스에 보냈는데, 몽칼름은 캐나다 방면군 총사령관으로서 영국의 오스위고 요새와 윌리엄 헨리 요새를 함락시켰습니다.

 

 1750년대만 하더라도 아메리카 대륙의 상당수는 프랑스 점령지, 즉 뉴프랑스와 루이지에나였습니다. 뉴프랑스에는 몬트리올, 퀘벡, 루이스버그와 같은 도시가 있었고 루이지에나에는 뉴올리언스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뉴올리언스에 가면 프렌치쿼터라는 옛 프랑스 마을이 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점령지의 인구가 영국점령지의 인구보다 매우 적었습니다.

 

 

1757년에 새로 영국 국무장관이 된 윌리엄 피트(William Pitt, 1708~1778)는 1758년에 제프리 앰허스트(Jeffery Amherst, 1717~1797), 제임스 울프(James P. Wolfe, 1727~1759) 장군들이 이끄는 정예병력을 아메리카에 파병시킵니다. 7년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들은 프랑스가 점령한 루이스버그 요새, 뒤켄을 함락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몽칼름은 카리용 전투(티콘데로가 전투)에서 4천의 군대로 1만 6천의 영국군을 이기고 카리용 요새를 점령하였다가 병력부족으로 물러서게 됩니다. 하지만 퀘벡전투에서 몽칼름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울프의 영국군에 대패하게 되고 고립된 된 북아메리카의 프랑스군은 1760년 9월 몬트리올에서 앰허스트 장군의 영국군에게 항복했습니다.  

 

 

 7년전쟁 중 퀘벡전투에서 몽칼름은 프랑스령 캐나다의 핵심인 퀘벡 방어에 나섰는데 제임스 울프가 이끄는 8500명의 영국 정규군이 루이스버그에서 퀘벡으로 접근하자 퀘벡 북쪽구역에 방어를 집중합니다. 영국군이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갈 경우 퀘벡과 퀘벡 강건너의 포인트 레비에서 엄청난 포화공격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울프는 포인트 레비 쪽의 수비가 허술함을 알아채고 공략하여 프랑스군이 밀집된 퀘벡 북부를 정면으로 대포를 겨누게 한뒤 포인트 레비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영국 선단은 세인트찰스 강을 타고 내려가 퀘벡 남쪽에 상륙해 버렸다. 수비력이 약한 남쪽은 힘없이 무너지고 몽칼름은 영국군과 아브라함 평원에서 전투를 벌렸는데 몬트리올에서 마키 드 보드로이 (Marque de Vodroy) 장군이 이끌고 오고 있는 지원군을 기다리지 못하고 섯부른 공격명령을 내렸으나 화력, 병력, 사기에서 모두 앞선 영국군은 프랑스군을 압도했습니다. 몽칼름 본인도 치명상을 입고 다음날 숨졌으며 영국군은 승리했으나 울프 장군이 저격당해 전사하였습니다. 영국군은 퀘벡 성벽을 겹겹이 포위하고는 마구 포격을 가했으며, 사흘 후인 1759년 9월 18일에 퀘벡은 항복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퀘벡 전투로 북아메리카에서 영국의 승리는 굳어졌고 고립된 된 북아메리카의 프랑스군은 1760년 9월 몬트리올에서 앰허스트 장군의 영국군에게 항복했습니다.  

 

 

올드 퀘벡의 로우 타운에 가면 대포알이 박혀 있는 나무, Canonball Tree를 볼 수 있습니다.

 

 

1759년 '아브라함 평원 전투'가 벌어졌던 캅디아망 위의 평지는 아직 일부가 남아서 공원으로 쓰이고 있는데 1800년대에 영국인들이 미국의 침략을 대비해서 지은 해안 포대인 Martello Tower가 있습니다. 또한 영국의 제임스 울프 장군의 동상과 기념비도 있다고 합니다.

 

 

 

 7년전쟁 이후 북미에서의 프랑스의 영향은 거의 없어지고 프랑스 점령지는 스페인과 영국의 점령지가 됩니다. 1763년 선언(Royal Proclamation of 1763)은 7년 전쟁 후에 영국의 킹조지3세의 이름으로 발표한 선언으로 대부분 프랑스편이었던 아메리칸 인디언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북미 식민지인에 대해서는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으로 이주 및 토지 구입을 금지시켰습니다. 

 

 

미국 독립전쟁기간(1775-1783년)에는 1775년 미국의 리차드 몽고메리 장군과 아놀드 베네딕트 대령이 퀘벡을 공격을 하게 됩니다. 몽고메리 장군이 이끄는 부대는 몬트리올을 점령하고 아놀드 베네딕트 대령의 부대와 퀘벡의 로어타운에서 합류하여 퀘벡의 어퍼타운의 성벽을 공격했습니다. 1200명 병력의 미국 독립군과 1800명 병력의 영국군이 맞붙은 전투 초기에서 몽고메리는 포격을 받고 전사해서 그가 이끌던 부대는 후퇴했지만, 아놀드가 이끌던 부대는 도시 내부로 침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격 초기에 아놀드가 부상당하고 지휘를 물려받은 모건은 시내에서 전투를 하다가 항복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 미국 독립군은 프랑스계 카톨릭교 개척민이 영국의 지배에 대항하여 궐기하는 것을 기대하였지만 퀘벡의 프랑스계 주민의 대부분은 가톨릭 교회의 후원으로 프랑스의 문화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독립 운동에 별로 관심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눈이 오는 악천후에 너무 서둘러 침투한 아놀드의 부대는 참패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서둘러 작전을 시행한 이유는 대부분의 부대원들의 근무기간이 끝나기 직전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근무기간이 일년이었다고 하는데...독립전쟁 한다면서 저렇게 짧은 근무기간이 있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가...^^ 퀘벡의 영국군 병력에는 정규군 이외에 퀘벡에서 징집한 병력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퀘벡 지역 이외의 British north america 즉 캐나다 지역의 주민들 중 미국 독립군을 지원하고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다는데.. 나중에 이에 대한 보복을 받았다고..사실 퀘벡의 영국군도 퀘벡지역의 주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옛 프랑스 식민지 지역에서 프랑스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영국군과 미국 독립군이 전투를 한 모양입니다...^^ 

 

 

1812년에는 미-영 전쟁 (미국에선 War of 1812, 영국에선 American War of 1812 to 1815라고 한다)이 발발합니다. 1812년 6월 18일에 미국이 영국에 선전 포고를 하면서 발발한 2년 8개월 간의 전쟁으로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던 제임스 매디슨과 그의 지지세력들이 영국에 적대적이었고 영국이 프랑스로 가던 미국 선박들을 나포하여 미국의 수출에 타격을 주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양측모두 승리하지 못한 전쟁입니다.  미국은 백악관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되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 불타버린 백악관을 메디슨이 하얗게 칠했는데 이것이 현재의 백악관의 모습입니다. 이 당시 이리 호, 온타리오 호, 챔플레인 호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한 여러 차례의 접전이 벌어졌고 1813년에 벌어진 요크(현재의 토론토) 전투는 캐나다 방어에 대한 취약성을 드러내게 했지만 퀘벡은 공격받지 않았습니다. 이 후 1820년대 미국을 방어할 목적으로 퀘벡에 있는 시타델 요새 대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미국의 해안 습격을 방어하기 위해 핼리팩스 요새 작업도 시작되었고 1826년부터 1832년까지 미국의 포격 위험이 없는 안전한 수로를 확보하기 위해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에서 킹스턴까지 이어지는 길이 202km의 리도운하가 건설 되었습니다. 또한 운하의 서쪽 끝을 방어하기 위해 영국은 또한 킹스턴에서 헨리 요새를 건설했습니다.

 

 

요크 요새 (Fort York)는  1793년 캐나다가 영국 식민지였을 당시,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현재의 온타리오주인 'Upper Canada'를 지키기 위해 건설한 요새입니다. 1813년에 미국의 공격으로 불타 없어지고 1815년에 재건되었습니다. 요크 요새는 1880년대까지 항만 방어용으로, 그리고 1930년대까지 해군 훈련용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요크 요새는 캐나다에서 1812년 전쟁 (미국-영국전쟁, War of 1812) 시기에 세운 건축물 중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 요새 내부에 8개의 건물이 당시 모습대로 복원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본 요크요새는 생각보다 좀 부실하게 보입니다.  

 

이 요새가 미국의 공격으로 불타고 난 뒤 영국은 서둘러 오타와, 킹스턴, 퀘벡의 방어태세를 정비합니다. 요크 요새의 배후도시로 시작하여 성장한 요크시는, 1834년 이름을 토론토로 바꾸었습니다. 1909년에 요크 요새를 사들여 1932~32년에 복원하고, 1934년 빅토리아 데이 (캐나다 국경일, Victoria Day)에 역사 유적으로 공개했다고 합니다. 토론토 방문시 CN타워에서 서쪽으로 5분거리도 안되는 곳이었지만 못보고 지나갔습니다.ㅠㅠ 

 

 

포트헨리 국립사적지 (Port Henry National Historic Site)는 1837년에 세워진 군사 요새로 당시 리도 운하와 이곳에서 운영하였던 조선소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이곳의 군사박물관에는 유적과 유품이 전시되며 당시 병사들의 복장과 무기가 재현되어 있습니다. 

 

 

 옛 병사 복장을 한 안내원이 자세하게 안내하며 관람을 돕고, 관광시즌이 되면 영국군 병사 차림을 한 사람들이 각종 세레머니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캐나다 관광 안내 동영상에서 보던 모습입니다. 아래는 Sunset Ceremony의 장면들이라고 합니다.

 

 

 국악대의 행진 뿐만 아니라 소총과 대포의 발사 등 볼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사실 우리 일행의 여정 중 몬트리올에서 천섬을 가던 도중에 있었는데 뭐 시간 상으로 도저히 들리기 어려웠을 것 같은...새벽에 이 지역을 지나갔는데 이곳에서의 행사는 저녁늦게 시작하는 모양압니다.

 

 

<퀘벡 어퍼타운 신시가지>

 

 어퍼 타운 성곽 서쪽, 아브라함 평원 북쪽에는 Quebec City Armoury (Manège militaire Voltigeurs de Québec, 퀘벡 비정규군 훈련소)와 Discovery Pavilion of the Plains of Abraham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Manège militaire Voltigeurs de Québec이라는 Gothic Revival Chateau-style의 이 건물에는 Drill Hall이 있습니다. 현재 1812년에 창설된 캐나다 제1 보병연대의 건물이며 Les Voltigeurs de Québec museum라는 군사박물관이 있기도 합니다. 1887년에 건설되었지만 2008년 4월에 대화재로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으나 보험회사가 손실배상을 거부하여 캐나다 정부가 2017년까지 복구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화재에 의해 소실된 천장이 아직 복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차량을 타고 지나가다가 처음에는 무슨 놀이동산 건물인 줄 알았습니다.

 

 

병참기지 역활도 하고 실내 훈련장도 되는 그런 복합 군사시설입니다. 그런데 화재로 지붕과 창문이 모두 소실되었습니다.

 

 

원래는 저렇게 멋있게 지어진 멋있는 군사시설이었다고 합니다. 캐나다를 여행하다보면 대부분의 건물들이 화재가 안난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추운 나라라서 남방을 많이 해서 그런가요...^^

 

 

Discovery Pavilion of the Plains of Abraham은 아브라함 평원을 관광하면서 퀘벡의 역사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Manège militaire Voltigeurs de Québec와 Discovery Pavilion of the Plains of Abraham이 위치한 Grande Allee 거리에는 건물 꼭대기에 리볼빙 라운지라는 식당이 있는 특이한 형태의 로유스 호텔 레 콘코드 (Loews Le Concorde)가 있습니다. 

 

 

 퀘벡주의사당 (Parliament Building , Hocirctel du Parlement)은 케네다 퀘벡시의 신시가지인 생 루이 거리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퀘백주의회의 석조 건축물로 1877년 공사를 시작해 1886년 완공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 유행하던 프랑스 고전양식으로 지어져 내부는 무척 화려하고 정문 위에는 '나는 기억한다(Je Me Souviens)'라는 퀘벡주의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Grande Allee 거리는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구경하였는데 이 거리는 주로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대부분 건물들의 특징은 외부 계단으로 이층으로 올라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

 

 

대부분의 건물의 주요 공간이 이층이라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눈이 많이 오는 나라에서는 현명한 생각일 수도..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외부로 없는 건물들도 일층 출입구가 바닥보다 좀 높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좀 오래된 건물들을 잘 개보수 해서 식당이나 상점으로 잘 쓰고 있습니다.

 

 

다음에 퀘벡시를 다시 방문하면 이 동네 식당애서 식사를 한번 해봐야 겠습니다...^^

 

 

이제 퀘벡에서 아침에 출발했던 트루아 리베에르로 이동합니다. 흐린 날씨에 벌써 날이 어두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에 가로등이 많이 설치되어 있는 퀘벡도시 근교를 지나...

 

 

시외로 나오니 저런 도로 풍경이...한국에서는 모기가 어려운 풍경입니다..

 

 

도중에 길가에 고장났는지 뒤 트렁크를 열어놓은채 운전자도 안보이는 차량도 보이고...

 

 

저녁 식사를 트루아 리베에르에 있는 Restaurant Le Sieur De Laviolette (6500 Boulevard Gene-H.-Kruger, Trois-Rivières, QC G9A 3C2)라는 식당에서 붸페요리로..

 

 

트루아 리베에르의 창시자의 이름을 빌려온 트루아 리베에르의 식당으로 시 외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반메뉴과 뷔페메뉴를 모두 취급하고 있습니다.

 

 

식당 내부는...미국과는 좀 다른...그런데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하여튼 좀 고급스러운 분위기...

 

 

붉은색 테이블보와 가지런한 테이블 세팅... 프랑스 요리 식당인 것 같은데.. 테이블위에 간장은?

 

 

뭐 테이블세팅은 평범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그런데...

 

 

준비된 음식을 보니... 입이 떡... 라스베가스 호텔 뷔페 같지는 않지만 한국 여느 호텔 뷔페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음식이 150여 종류라고 하고 다른데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음식들이 보입니다...캐나다의 퀘벡주의 붸페식사에는 케잌 등 후식류가 많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행 중 불어나는 체중 걱정하면서 여러음식들을...처음 보는 음식들이 많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다시 우리를 태운 차량은 세인트 히야신스(Saint Hyacinthe)를 향해 달립니다. 이미 날은 어두어졌고 장기간의 여행에 지쳐서 그런지 꾸벅꾸벅 졸게 되네요...

 

 

드디어 Hotel Des Seigneurs Saint Hyacinthe에 도착해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숙소도 깨끗하고 포근하네요...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미국 뉴욕으로 떠나야 합니다... 내일의 여정은 구경할 것은 별로 없고 주로 이동만...